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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겸 Feb 13. 2023

[사설] 대비하는 곳에선 재해, ‘설마’하는 곳에선

230213 조선일보 사설





11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 일대가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폐허로 변해 있다. / 뉴시스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희생자 숫자가 3만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10만명을 넘게 될 것이라는 전문가 예상도 나왔다. 건물 잔해 아래에 갇힌 사람이 최대 20만명에 달할 수 있다는 추정도 있다. 끔찍한 재앙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전체 희생자가 1만8500명이었지만,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90명에 그쳤다. 대부분은 쓰나미로 인한 익사자였다. 튀르키예 지진은 규모가 7.8, 동일본 대지진은 9.0이었다. 튀르키예 지진의 강도는 동일본 대지진의 60분의 1도 안 됐다. 그런데도 지진 사망자는 튀르키예가 현재 집계로도 200배라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지진 대비 태세가 다른 데서 비롯된다. 일본과 튀르키예는 모두 지각판 충돌 지점에 위치해 지진에 취약한 나라들이다. 그러나 일본은 건물 내진 설계가 철저하다. 경보 시스템 등 대피 인프라도 확실히 갖춘 나라다. 반면 튀르키예는 1939년 3만2000명(규모 7.8 지진), 1999년 1만7000명(규모 7.6) 등 대량 지진 사망자가 나온 나라인데도 대비가 허술했다. 1999년 지진 이후에 지진세를 걷기 시작했고, 2007년부터 건물 내진 설계를 의무화하긴 했다. 하지만 2007년 이전 건물들은 지진 대비가 안 돼 있고, 신설 건물들도 법규를 무시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튀르키예 정부는 2018년 내진 설계 위반 건물들에 대한 처벌 면제 조치까지 취했다. 그런 허술한 대비가 이번에 ‘팬케이크 붕괴’ 등 재앙을 부른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라시아 지각판 가운데에 위치해 지진에서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그러나 태풍, 홍수, 화재, 위험물질, 인파 몰림 등의 사고에 취약점을 드러내곤 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세월호 침몰, 핼러윈 참사 등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것들은 사고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철근을 충분히 박고, 부실 화물 고박과 불법 개조를 하지 않고, 안전 점검을 철저히 하고, 인파 분산의 대비책만 실천했더라면 피할 수 있는 재앙이었다. 작년 9월 태풍 힌남노 때 포항 냉천의 범람으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7명이 숨지고 포스코 제강 설비가 가동을 멈췄다. 냉천 상류에 홍수 조절용 댐만 지었더라도 달랐을 것이다. 환경 단체가 그걸 반대했다. 정부가 뒤늦게 댐 건설을 다시 시도하고 있다. 이런 터무니없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60~80년대에 댐·교량과 에너지 설비 등 인프라와 중화학 공업단지들이 건설돼 40~60년 지났다. 노후 설비 점검을 소홀히 하다간 상상도 못 할 참극이 빚어질 수 있다. 튀르키예 지진을 계기로 안전 취약 요소들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재난 예방에 관한 한 돈이 더 들더라도 계산 결과나 예측치, 그리고 관행보다 한발 더 강화된 안전 조치를 취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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