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우리는 공감할 수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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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집안에 대한 열등감, 의로운 일을 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박사라는 미명 下에서, 그러한 평범한 서민의 삶조차 나는 이루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와 나라는 도대체 무엇인가?
비교적 긴 편지를 쓰면서, 석희한테 약간의 혼란을 주었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군.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진정으로 석희가 가야 할 운명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나 그 길이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방향이라면,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을 거야.
술에 취한 모습, 그리고 그 상태에서 나에게 대한 석희의 태도는 (물론 취기에서 그랬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단순한 충동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그 모습이 진실일 수도 있으니까. 적어도 몇 번의 만남 속에서 가슴 깊은 것을 나눌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공감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발전될 수 있을 것이라 나는 기대하고 있어.
그러나, 어쩌면 말하기 힘든 나의 문제를 이렇게 편지로나마 나는 쓰고 싶었고, 또 실제 미래의 문제도 나로서는 헤쳐나가기 어려운 문제들로 쌓여있는 상황에서 미래를 같이 할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좀 더 깊은 석희의 판단을 기다린다는 뜻도 있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