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사랑은 상처로 변모하고 있다
우연히 SNS에서'만나면 만날 수록 행복해지는 사람의 특징'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봤다. 4가지로 요약된 특징은 이렇다.
1. 매사 긍정적인 사람
2. 미래가 불투명한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
3. 감정적으로 안정된 사람
4. 힘들다가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이는 아마 연인관계, 대인관계에 해당되는 특징일 것이다. 처음 특징을 봤을 때, 나의 사랑하는 연인이나 주위의 친구들을 떠올리게 됐다. 순간 '그 사람은 어떤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나는 어떤가?’라 스스로 묻게 됐다. 여기서 들었던 생각은 2가지다. 첫째,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둘째, 나는 나에게 1,2,3,4에 해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
첫째,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긍정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고 나의 미래는 투명한가? 사실 그렇지 않다.
이런 상황의 내가 감정적으로 안정되어있을까? 아니다.
종종 취업을 위한 대외활동, 어학공부 등을 하면서도 불안함이 몰려온다. 그럴 때마다 주위에 쏟아지는 광고와 영상, 뭐가 진실이고 가식인지 모르는 SNS에 또 다른 감정적 요동을 느낀다. 살기 참 어려운 시대다. 어느 시대든 상대적인 삶의 고달픔은 모두 있었겠지만, 현시대는 정말 말 그대로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지금 한국은 IMF 이후 최고치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취업시장 진입 계층인 20대 후반(25~29세) 취업준비생(취준생)의 실업률이 외환위기였던 1999년 이후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 19 영향으로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멈추면서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을 찾으려는 취준생들이 직격탄을 맞은셈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 2020년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20대 청년의 실업률은 10.2%로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99년 6월 이후 역대 처음으로 10%대를 경신했다. 20대 청년 10명 중 1명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는 얘기다."
(출처 :2030 구직 단념자, IMF 때보다 더 많아져 “취업 의욕 바닥”, 200726, 주간동아)
이런 기사들을 보면서 과연 어떤 청년이 감정적으로 안정될 수 있을까 싶다.
또한 나는 여성이다. 구글 뉴스 검색창에 '여성'이라고 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여성 칸 엿보려고 공중 탈의실 들어간 남성... 벌금 300만 원", "박 시장 힘들 때 달래주기는 여성 직원의 몫, 남성이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여성 BJ 치마 속 불법 촬영 시도한 20대 결국 구속"이다. (물론 모든 기사가 그렇다는 게 아니다. 다른 류의 기사도 많다) 이런 글을 보면 나는 더더욱 감정적으로 요동친다. 혼자 어둑해진 밤길을 걷다보면 불안함에 잠식될 때도 많다.
긍정(肯定)이라는 건 1. 그러거나 옳다고 인정하는 것 2. 바람직한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이 사회는 바람직한 것인가? 청년들은 번아웃을 겪고 있다. 정신적인 탈진이다. 최근 인천 국제공항의 정규직 전환 논란에서 보인 많은 청년들의 반응에서도 느낄 수 있다.
"'1년 이상 미취업 청년' 70만 명 돌파... 금융위기 후 최대", "한국 10년간 청년 실업자 28.3% 증가... 청년 고용률, OECD 36개국 중 32위" 등의 기사 제목이 매일 들어가는 포털 앱에서 보인다. 그런데 누가 '긍정적'으로 나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을까? 이것이 옳다, 바람직하다고 인정이 되는가? 하지만 사회는 청년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보라며 텅텅 빈 위로와 응원을 던지기 일쑤다.
청년들의 정신적 탈진은 연애 현실에서도 볼 수 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그만큼 사랑의 형태도 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연애는 '사랑 트렌드'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사랑은 상처로 변모(變貌)하고 있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현실의 상황과 문제로 헤어짐을 '선택' 한다. 회계사나 공무원을 준비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하는 행동 중에 대부분은 연인과 헤어지는 것일 거다. 일반 대학교 4학년 취준생들은 특히 그럴 것이다. 각종 대학생 커뮤니티 포털 연애 게시판에는 '나 취준생인데 계속 사귀어야 할까', '둘 다 취준생인 데', '회계사 준비하려는데 이별' 등의 제목을 가진 글을 종종, 또 많이 볼 수 있다.
주위에 취업을 이유로 헤어진 친구들에게 왜 그러냐 물으면 그게 예의라고 말한다.'나는 그 사람을 챙길 수 없다. 그 사람을 신경 써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나는 여자에게 듬직하고,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여자를 이끌어야 한다'는 등의 잘못 부여된 남성성이 주는 부담감에 눌린 청년 남자에게 더 많이 보이는 행태인 것 같다. '연애'와 '사랑'은 엄연히 다르다. 연애의 틀과 공식은 미디어와 관습이 제공한다. 우리 안에 내재되어있는 '나(너)는 이런 남자 친구가 되어야 해', '나(너)는 이런 여자 친구가 되어야 해'는 연애를 하며 헛된 기대와 상상을 하게 만든다. 아마 이게 상처로 변모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일 거라 생각한다. 연애는 답이 있는 문제가 된다. 그 안에서 하나의 공식이 형성되며, 이 공식에 맞지 않으면 헤어진다. "현실을 살기 위해서 관계를 끊어야한다." 잘 곱씹어보면 참 아이러니한 말이다. 나를 위해서라 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아니다.
사랑은 연애를 포괄하는 더 넓은 개념이다. 또한 청년 시기에 사랑은 정말 중요한 주요 가치이자 경험이다. 섹슈얼한 사랑 외에도 우리는 주위에서 다양한 사랑을 경험한다. 부모님에게 받는 사랑, 우정에서 느끼는 사랑 등과 같다. 신의 아가페적 사랑도 포함된다. 여기에는 '공식'이 없다. 연애를 하게 되는 순간 상대를 그 사람 자체로 봐주지 않는다. 나에게 꽃을 선물해야하는, 기념일을 챙겨야하는 연인이 된다. 물론 이런 게 나쁘다, 잘못되었다고 말하는게 절대 아니다. 나는 누군가를 챙겨주고 싶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이런 연인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한다. 다만 그게 '해결해야 하는 일(task)'가 된다는 게 문제다. 특히 청년에게는 그렇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다, 그런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시작을 해도 이게 맞는지 불안해서 매일이 괴롭다.
부모님의 기대치와 주위 친구들의 시선이 신경 안 쓰일 수 없고 나 자신이 쌓아온 스펙은 뭐했나 싶을 정도로 형편없어 보인다.
그래도 하루에 뭐라도 미래와 관련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나는 뒤처진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매일 계획표를 짜고 합리화한다.
‘이 정도면 됐어’.
그중에 남자 친구,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가, 기념일이 떠오른다. 그건 완료해야 하는 하나의 부담스러운 업무가 되어버린다. 머릿속에 있는 연애 공식에 따르면 선물을 준비하고 맛집을 가거나 카페를 가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연애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할 텐데, 할 일은 많고 돈은 없는게 내 현실이다. 그렇게 데이트를 완수하기 어렵게 느껴지게 된다. 이는 내가 처리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되어버린다.
대다수의 청년은 아마 책임감이 없어보이는 자신을 탓할지도 모른다. 부모님을 탓하기엔 너무 불효자인 것 같다. 사회를 탓하기에 변화하는 건 없고,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려면 내가 환경을 단호하게 결단해서 끊어내야 한다. 감정적인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쓸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야 하니, 부담스러운 ‘연애’는 포기해야 한다는 거다.
혹시 이런 청년들이 못되고 이기적이고 노력하지 않는 걸로 보인다면 당신은 정말 반성해야 한다. 그들은 자기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서로에게 미안해한다.
근데 우리는, 청년들은 살고 싶을 뿐이다. 행복하고 싶을 뿐이다. 진심으로 행복해서 웃어보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과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
궁극적으로, 내가 태어난 나의 국가에서 의, 식, 주를 해결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이를 관계에서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런다, 의지가 박약이라고 말하는 건 정말 짧고 미련한 생각이다. 우스갯소리로 떠도는 말 중에 '한국 청년들은 착하다. 취업이 안되는 것에 대해 사회를 탓하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자신의 스펙, 학력, 연애, 인생, 존재를 탓한다.'는게 있다. 그리고 그걸 똑똑한 청년들은 스스로 인정한다.
여기서 다시 위에 ‘만나면 만날 수록 행복해지는 사람의 특징’을 보자.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특히 그런 청년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을 거르고 거르고, 누가 남을까?
또한 묻고 싶다. 정말 미래가 불안정해서 부정적으로 미래가 그려지고, 가끔은 자기 자신조차 부정하고 싶은 사람. 그러다 보니 감정이 요동치며 가끔을 일주일, 한 달, 매일이 힘든 누군가는 ‘정리되어야 하는가?’. 아니다.
그들은 정리될 게 아니라,
믿고 기다려주면 된다.
연애의 틀을 깨고 사랑으로 기다리는 거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랑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모든 걸 덮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고 견디는 것이다. 또한 성경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에베소서 4:31-32)"는 구절이 있다.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사람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청년에게 그들을 향한 믿음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청년들은 스스로에게 믿음과 기회를 줘야 한다. 그리고 청년들 서로가 서로를 믿어줘야 한다. 건강한 경쟁의 이면에는 상대의 실력과 내 실력에 대한 정당한 공동체적 믿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둘째, 나는 나에게 1,2,3,4에 해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
여기서 다시 한번 위에 특징을 생각해보자. 이번에는 ‘나는 나에게 저런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라보자. 많은 청년, 특히 취준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건 '나를 긍정하는 것'이다. 아마 위에 1번 항목, 매사 긍정적인 사람에서의 긍정은 '나'를 긍정하는 것일지 모른다. 내가 나를 옳다고 인정해주는 것. 나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주는 것이다.
1. 매사 (나의 존재에) 긍정적인 나
2. 미래가 불투명한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나
3. (나의 존재에) 감정적으로 안정된 나
4. 힘들다가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나
걱정마라 당신의 존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실 숨만 쉬면서 살아가기도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을지 모른다. 무언가에 눌려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부모님의 기대와 나의 양심에서 오는 중압감일 수도 있고, 내일 있을 연인과의 데이트에서 오는 부담과 불안함일 수도 있다. 이 외에 청년 각자가 지고 있는 짐은 정말 가혹하고 무겁게만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 청년에게,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의 존재 자체는 긍정이라는 것이다. 사회의 병폐는 부정적인 게 현실이다. 기성 사회가 만들어낸 공식과 틀에 갇혀서 타인, 자신의 존재를 해석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자체로 자유로울 수 있고 인간으로서 존엄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는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인생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근데 놀랍게도 주관식은 적어내면 답이 되지만, 인생에는 답이 없다. 굳이 답을 채워 넣을 필요도 없다.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단순하고 별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 디폴트 값이다. 가끔은 잊을 수 있지만, 스스로의 존재는 소중하고 그 자체로 긍정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위 게시글의 내용 중 SNS 글은 책 <관계를 정리하는 중입니다>의 일부 내용입니다. 결코 이 책의 내용의 일부를 비하,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것이 결코 아님을 밝힙니다. 글을 보고 들었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좋은 인용의 소재로서 작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