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가겸

팬데믹 시대의 물음,‘길’이 던지는 해답

삶의 가치와 의미가 충돌하는 지점으로서,

by 이가겸


올해 1월 23일 기준 한국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 19’) 확진자는 74,692명, 전 세계는 9620만 명이다. 점점 심해지는 상황으로 우리의 생존 체계는 달라지고 있다. 상상하지 못했던 거리두기의 일상화로 ‘나’와 ‘우리’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어제까지 함께한 친구와 카페에 갈 수 없고, 동아리 친구들과의 약속도 취소되었다. 아르바이트에서 해고되고 저번 주에 내가 출근하던 회사가 사라지는 현실을 마주한다. 이런 현실은 점점 일상이 되어간다. 그래서 누군가는 코로나 19 시대를 이전과 다른 뉴 노멀(New Normal) 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난 3월 세계 보건기구(WHO)는 코로나 19에 대해 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인 ‘팬데믹 (pandemic)’을 선언했다. 팬데믹은 새로운 질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이 ‘새로운 질병’과 ‘전 세계적 유행’의 소용돌이에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세계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지?’라는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는 ‘어느 길을 가야 하는가?’라는 길의 상징이 주는 고전적 물음과 연결된다. 신혜경 서울대 미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코로나 19가 일으킨 위기 속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속됨으로써, 지금껏 바쁜 세상 속에서 잊고 살았던 인간의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코로나 19는 경제, 과학, 예술 분야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에 교차하여 영향을 발휘한다. 그리고 각 분야의 모두가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된다. 곧 코로나 19가 던진 물음은 ‘삶의 가치와 의미가 충돌하는 지점으로서의 길’이 되는 것이다.



‘길’ 그리고 윤동주의 <길>


윤동주는 한국 고전 문학의 기둥이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윤동주의 <길>과 작품들은 시어가 지닌 고도의 상징성으로 인해, 순도 높게 정화된 내면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더욱 깊은 차원의 신앙의 의미를 머금고 있는 경우가 많아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읽혀왔다.


특히 그의 시 <길>은 중 · 고등학교 정규 교과서에 실리고 수학능력시험 문제로 출제될 만큼 고전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본 글에서는 이런 <길> 속 텍스트로 ‘길’이 주는 고전적 질문과 상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윤동주 <길> 전문 ]




1. 한 가지 길은 없다.


길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빙 둘러 돌아가는 에움길, 등처럼 굽은 등굽잇길, 풀이 마구잡이로 무성하게 자라 있는 푸서릿길 등 참 다양하다. 이처럼 공간의 속성을 갖는 길도 있지만 마음에도 길이 있다. 흔히 ‘마음을 길들이다’라는 표현을 쓴다. ‘길들이다’는 말이 ‘길’의 어원이라는 말도 있는 만큼, 길들인다는 건 여러 길을 걸으며 마음 근육을 단단하고 익숙하게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을지 모른다.


또 요즘 ‘꽃길만 걸어’라는 문구가 있다. 주로 친구에게 미래에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단지 현세의 풍요를 바라는 것에 더해 행복한 마음을 갖게 되길 소망하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윤동주의 <길>에는 돌담길(1, 2연), 쇠문 앞길(3연), 풀 한 포기 없는 길(5연)이 있다. 주어진 길 외에도 화자가 쇠문의 담 앞에서 쳐다보는 하늘도 길이 될 수 있다. 구름이 자연스레 만든 하늘의 길, 신에게 향하는 마음의 길일 수 있다. 이 길은 자신의 자아를 찾는 새로운 탐색의 길로 확장된다.


앞선 종류의 길들이 이어져 의미를 만든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길이 있다는 사실은 코로나 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 없는 길은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세계는 처음 걸어보는 길을 걷고 있다.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공동체의 가치에 맞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게 된다.



2. 길이 주는 기회


우리는 길 위에서 방향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길은 또 다른 기회가 된다. 우거진 수풀에 숨어있던 길을 발견하거나 오던 발자국을 이어 길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윤동주 <길>이란 말은 그의 산문 <종시>와 관련성을 짐작하게 한다. ‘길’이란 말은 ‘종시’란 말의 변형이라 해석해볼 수 있다. ‘마치고 시작한다’는 것이 바로 ‘길’을 떠난 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지난 일을 끝맺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길을 찾아 나선다는 뜻이 된다. 이 속에서 작품 속 길이 주는 기회에 주목해보겠다. 무엇을 잃어버린 채 길을 걷던 화자는 곧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화자는 더듬어 걸어본 길에서 잃어버린 상실 속에서 방황하고 슬퍼할 기회, 이를 끝맺고 새로이 결단할 기회를 얻었다.

코로나 19 시대에 앞으로 놓인, 또 놓일 길을 찾는 것은 나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라고 해석할 수 있다. 팬데믹은 우리에게 ‘과거에 걸어온 길을 단단하게 보완할 기회’이자 ‘새로운 미래의 길을 만들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렇게 기회라는 길의 상징은 작품을 넘어서 현시대와 미래까지 끊임없이 되물어질 것이다.


3. 길, 그 자체가 새로운 의미


인생행로(人生行路)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인생의 길을 가는 것’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인생길’을 걷는다. 인생길을 가는 행위와 길 자체는 삶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길의 속성 이기도 하다.


성경 속 예수는 고통 속에서 십자가를 들고 처형장인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그곳은 인간으로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죽음에 스스로 걸어가고자 하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죽음의 길을 믿음으로 걸었고 그는 부활해 세상의 구원자가 되었다. 그리고 예수가 걸었던 길은 믿음과 사랑의 길이 되었다. 예수가 걸었던 길은 그 자체로 사랑과 구원이 되었다.

<시> 속에서 화자는 길을 걷다 눈물을 흘렸고 하늘을 보았다. 길 위에서 슬픔의 감정을 흘려보내며 풀 한 포기 없는 현실을 마주했다. 이를 통해 그는 결단의 동기를 얻는다. 이는 성찰의 의미를 갖게 되며 화자가 걸어온 길 은 공간적 속성을 넘어선 그윽한 뜻을 갖게 된다.



[결론 : 팬데믹 시대의 물음,

‘길’이 던지는 해답]


팬데믹 시대를 맞은 우리의 질문 ‘나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는 자체로 의미가 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은 과거와 현재의 길을 이어갈 새로운 길을 고뇌하는 행위이다. 코로나 19 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우리의 번민에서 나온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은 이처럼 길의 상징체계로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길은 ‘다양한 종류를 가지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며,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속성이 있다. 이는 팬데믹 시대의 우리가 갖게 되는 질문과 연결된다. 어떤 종류의 길도 의미 없는 길은 없으며,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을 새로운 기회로 만든다. 또 그 자체로 사랑, 평화가 될 수 있다.


코로나 19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현실을 마주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길이 주는 물음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는 힘겹지만 열심을 다해 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길을 걷는 중이다. 아직 살아있다. 전략국제 문제연구소(CSIS)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 선임부소장은 이번 상황에 대해 ‘코로나 19는 엄청난 재앙이다. 공포와 고통이 세계를 뒤덮고 있지만, 한편에선 미래의 희망이 싹트고 있기도 하다. … 바이러스 퇴치 이후 변 화무쌍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분명 곧 우리가 걷는 이 길은 반드시 희망의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 참고문헌

- 류양선 (2004). 윤동주의 散文과 詩의 관련 양상 - 산문 <終始>와 시 <길>을 중심으로. 한국현대문학연구, 16, p457.

- 신혜경 (2020.08.17). 코로나19현상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2. Issue Report(한국연구재단), 12호, pp36-45.

- 마이클 그린. (2020.04.10). ‘[글로벌 포커스] 코로나 19 재앙 속에서 자라는 희망의 싹들’. 중앙일보. 2020.12.01 (https://news.joins.com /article/2375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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