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14년.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감정은 곧 시들해지는 법이다.
따라서 정작 문제는 이렇다.
이제 막 샘솟은 감정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알게 된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전혀 없다고 느낀다면
사람들은 금방 지루해지고 냉소적이 되며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중략)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
- 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다만 우리는 '미디어'에서
'설리가 평소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는
텍스트를 보고,
의심되는 현실을 알게 될 뿐이다.
구글에 '설리'를 검색하면 뜨는 90%의 언론사, 잡지사에서 올라온 사진이다. 그녀는 결코 '최진리'로써 세상에 비치지 못했다. 사람들은 SNS에 보이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업로드한다. 말 그대로 소통(Net-working) 하기 위해서다.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94년 부산에서 태어난 11살의 그녀는 아역배우로 사회에 등장했다. 그 안에서 만들어진 상(image)은 그녀의 자아가 아니었다. 사회에서 부여된 외투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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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외투를 입고, 최선을 다했다.
작년에는 팬들과 소통을 위해 진리 상점을 오픈했고 수익은 전부 기부되었다.
그녀는 최선 속에서, 소통을 위해 더 노력했다.
'스스로를 지킬 자신이 있나요?'라는 쎄시 인터뷰 질문에
'그럼요, 저는 제 자신을 지킬 만큼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요. 남의 눈치를 보고 바꿀 생각도 없고요. 그리고 제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커요. 보통 생각이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가깝게 지내듯 제 주위에는 위태로움을 즐기는 사람은 없어요. 되레 저를 잡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죠. '진리야. 그 길은 위험하니, 가지 마'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요. 저는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예요."라 말했다.
그녀는 회피하지 않았다.
설리로써 진리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언제나 그녀의 모든 행태는 가십 소재가 되었다. 그녀의 감성, 취향, 생각은 대중의 성화상이자 아이콘이 되었다. 또, 표적이 되어 무수한 화살을 맞기도 했다.
연민이 뻔뻔함 감정이라면 나는 분노하고 행동하려 한다. 세대가 지날수록 네트워크 속에서 위태로운 개인이 죽어가는 모습은 더 처참해진다. 이제는 마음이 너무 아파 둔하게 느껴질 정도다. 매체의 필터는 견고해지고 있다. 개인은 익명과 미디어 뒤로 숨어버린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공감하고 타인의 삶을 느낀다는 건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1초면 올라가는 몇 글자의 댓글, 즉시 피드백이 오는 라이브 방송, 유혹과 자극 범벅인 언론은 공감보다 본능에 충실하도록 나를 이끌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소통과 공감이 불필요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어차피 해봤자 안 되는 것'.
하지만 소통은 '시도' 자체로 의미가 있다.
공감은 온전히 위로가 된다.
사회는 개인의 집합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적어도 우린 공감하고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감정은 곧 행태가 된다.
연민에서 이어지는 행태에 대해
이제는 소리 내서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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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이해하고
설리를 빛내기 위해 버텨온
최진리의 14년,
우리는 결코 그녀의 고통을 알 수 없다.
겪어본 적 없는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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