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의 임신한 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어르신들

임산부 배려석에 임산부는 언제 앉을 수 있나요?

by yololife

임신을 하고 바로 찾아간 곳은 보건소였다.

임산부 등록을 하고 엽산과 임산부 핑크 배지를 받았다.

말로만 듣던 임산부 핑크 배지가 효과가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그 핑크 배지를 많은 사람들이 알까?





나는 30대 초반에 운동을 하다가 다리 근육을 다친 적이 있었다. 병원에 2주 정도 입원했다가 퇴원을 했고 복귀 후 회사에 출근을 했다가 앉아서 근무를 하기가 힘들어 도중에 다시 집에 돌아왔다. 회사에는 출퇴근은 힘들지만 재택이 가능하다면 집에서라도 일을 하겠다고 했다.(일에 대한 의지가 무척 강할 때였다.) 그리고 회사의 배려로 회사 내 첫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재택이라고 일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마음으로는 출퇴근만 하지 않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다리 근육이라서 그런지 앉아있는 것도 무리가 되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내가 일을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꾸역꾸역 일을 했다. 오히려 집에서 밤늦게까지 야근까지 했다. 재택이라고 일을 설렁설렁했다는 인식을 조금이라도 주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나와 함께 일하지도 않는 팀 동료가 재택근무하는 나에게 메신저로 갑자기 내가 짜증 난다며 욕설만 하지 않았지 온갖 말을 쏟아부었다. 내가 그 동료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는데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나와 협업하는 사람이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몸도 아픈데 마음까지 크게 상처를 받았다.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내가 싫다는 이야기를 건너서도 들어본 적도 없는데 아픈 내게 대놓고 이런 이야기를 들은 건 충격이었다. 차라리 몸이 아픈게 낫겠단 생각이 들어 출근을 하기로 결심했다.


출근길은 집에서 역까지 10분을 걸어서 지하철을 세 번을 환승해야 했다. 목발과 함께하는 출퇴근길이 시작되었다. 힘들 것을 알았지만 수도권의 출퇴근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택시 타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출근길 첫 번째 날 목발을 짚은 채 지하철을 타면 누군가는 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처음엔 노약자석과 일반석의 중간인 좌석이 없는 곳에 서 있었다. 어느 한 자리 앞에 선다는 게 자리를 비키라는 의미 같아서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다리가 너무 아팠다. 결국엔 목발이 그려져 있는 노약자석 앞에 섰다. 노약자석은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꽉 차 있었다. 그 앞에는 노약자석에 앉기를 기다리는 또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서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쭈뼛거리며 절뚝절뚝 거리며 목발을 짚은채 섰다. 지하철이 급정차할 때마다 목발을 짚은 손과 다리가 아파왔지만 누구 하나 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서있다가 첫 번째 환승지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가는 사람들 틈에 치여서 쓰러질까 봐 최대한 늦게 내렸다. 엘리베이터가 가까운 곳에 있는 곳이면 다행인데 두 번째 환승지에서는 너무 멀어서 할 수 없이 계단을 거북이보다도 느리게 올라갔다. 여러 사람들이 흘깃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두 번째 지하철을 타고 노약자석 앞에 다시 섰지만 역시나 양보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꽤 긴 출퇴근길에서 목발을 짚고 있는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사람은 있긴 했지만 정말 드물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목발을 짚은채 한 번도 앉지 못하고 내내 서서 출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의외로 사람들은 목발 짚은 사람에 대해 무관심했다.

지하철 환승을 위해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도 있고 그렇게 멀리 있는 곳도 있는 것이 놀라웠다.

목발을 짚고 출퇴근하는 내내 TV에서 장애인들의 대중교통의 불편함과 호소를 했던 인터뷰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평소 관심이 있어 힘들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곳곳에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마음에 받는 상처가 더 크겠다는 생각이 더욱 와닿았다.



목발과 함께한 출퇴근길은 2주간 계속되었다. 첫날 느꼈던 감정은 마지막 날이 될 때도 변하지 않았다.

2주간의 차갑고 서러웠던 지하철 공기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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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좌석으로 선명하게 지정된 임산부 배려석 좌석이 있다. 그 좌석을 미리 비워둬야 할지 아니면 아무나 앉아있다가 임산부가 오면 비켜줘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기획] 임산부 배려석 자리양보는 의무인가, 배려인가?



나는 임산부 핑크 배지에 회의적인 것도 있었지만, 임산부 배려석에서 폭행당한 사건도 있어서 차라리 배지를 달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산부석 임신부에 "왜 앉냐" 발길질… 집유 판결 논란 / JTBC 뉴스룸


출퇴근길은 늘 불안했다.

버스에서의 임산부 배려석은 앞자리지만 타이어가 있는 높은 자리가 지정되어있을 때는 한숨이 나왔다.

임신 전에도 불편해서 잘 앉지 않는 자리인데, 임신 후에 그 자리를 편히 앉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앉기 좋은 임산부 배려석도 있었지만 임산부로 보기 힘든 사람들이 앉아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만원 지하철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승, 하차 시 여기저기 부딪히거나 밀릴 때 심장이 쫄깃쫄깃했다. 시험관으로 어렵게 얻은 아이니 언제든 날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불안한 마음이었다.

임산부 배려석이 비었는지 볼 때마다 임산부가 오면 비켜주려고 앉아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고개를 푹 숙인 채 핸드폰에 빠져있거나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핑크 배지를 착용하고 있든 아니든 앉아있는 누군가 앞에 서서 자리를 비켜달라는 신호를 보낼 마음은 없었다.

용기를 내어 앞에 서서 신호를 보낸다고 해도 못 볼 것이 뻔했다. 어쩌면 볼 마음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그들만의 이유가 있겠지.. 란 마음으로 스스로 마음을 달래 보았다.


임신했다고 무조건적인 배려를 받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겉으로 티 나지 않고 임신 중 가장 몸조심을 해야 할 초기의 임산부 마음은 복잡했다.

목발과 함께한 출퇴근길 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뱃속의 아이들과 함께한 출퇴근길에서도 여전히 배려 없는 배려석에 앉기는 힘들구나.


임산부는 열 달 동안 하나의 생명을 건강하게 키워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가진다.

몸과 마음을 배려해주는 사회라면 뱃속의 아기가 태어나 자라는 미래는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을 품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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