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임산부들이 모두에게 축하받고 행복한 생각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내게 기억에 남는 첫 임밍아웃(임신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것)은, 내가 30살 즈음 퇴근길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흐느끼며 지인과 통화한 장면이다.
퇴근길 사람이 꽉 찬 지하철에 마침 빈자리가 생겨 앉았는데 옆자리에 울면서 통화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흐느끼고 있어서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내게는 그 어떤 소리보다 크게 느껴졌다. 임신 초기인 그녀가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렸더니 퇴사를 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노동부에 신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부당해고에 대해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으로 지인과 한창 이야기 중이었다. 작은 회사여서 임신과 출산, 육아휴직 기간 동안 그녀를 대체할 인력이 필요하다고 했고, 그녀가 다시 복직을 하게 된다면 대체 인력을 또 퇴사시켜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작은 회사를 경영하는 입장에서도 임시직으로 사람을 뽑기가 어려울 것이기에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임신이 곧 퇴사를 의미한다는 것을 그녀의 억울한 목소리에서 알 수 있었다.
나에게도 닥칠지 모른다는 마음 때문인지 결혼도 하지 않은 내가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울어주고 싶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나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나에게 임밍아웃의 이미지는 '퇴사'였다.
이러저러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니 결혼은 최대한 늦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그렇게 굳어져 갔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지만, 그동안 내가 목표를 향해 공부를 하고 힘들게 노력한 결과를 다 중단하고 싶진 않았다.
점점 출산율은 줄어들고 정부에서 펼쳐내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혜택은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아이 갖는 걸 미루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은 조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에 희망을 품어야 하는 걸까? 아마 우리 세대는 힘들고 우리 다음 세대쯤 가능하지 않을까?
그로부터 몇 년 동안 나는 이직을 했고, 더는 결혼을 미룰 수 없는 나이가 돼서야 결혼을 하게 되었고 어려웠지만 임신을 했다.
조마조마한 나의 임신 초기가 흘러가고 있다. 병원을 다녀오자마자 회사에 이야기해서 임신기 단축근무를 신청하고 싶었지만 아직 심장소리도 듣지 않았는데 너무 이른 것 같아서 조금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임산부 근로단축은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근로자가 1일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다.
임신을 아무리 빨리 알아도 6주는 되어야 임신 사실을 알 수 있고, 심장소리까지 듣고 나면 실제로 임신 초기에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은 한 달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근로단축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다는 환경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우리 회사는 육아휴직도 보통 1년씩 해도 다들 돌아와서 복귀하였고, 남직원들도 가정을 중요시하는 분위기였다.
병원에서 쌍둥이의 심장소리를 듣고 난 후 팀장에게 먼저 임신 소식을 알렸다.
"임산부 근로단축을 하겠다. 팀 내 공유는 아직 너무 초기라서 나와 협업하는 사람 위주로 조용히 알리고 싶다.
임신 초기가 지나면 그때 팀 내 모두 공유하고 싶다"라고 했다.
팀장은 내 의견을 존중해 주며 안정기까진 비밀보장을 해주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임신 초기에 임밍아웃을 미루고 싶었던 건 두 가지 이유였다.
임신 초기에 쌍둥이라는 것을 미리 알리기가 조심스러웠다. 한 명이 도태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가장 컸다.
사람들에게 쌍둥이라는 것을 알렸는데, 나중에 쌍둥이가 아니고 한 명이라는 말을 해야 할 때가 온다면 내가 그 감당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알수록 내가 그 말을 자주 해야 할 상황이 오겠지? 그런 일은 없어야 하지만..
두 번째 이유는 쌍둥이면 시험관 아기 시술했어요? 란 질문을 듣기가 거북했다.
친한 친구들에게도 시험관 아기 시술은 진행 중에 하지 않았다. 내가 난임이라서 그 시술을 한다는 말을 입밖에 꺼내게 되는 순간, 나 스스로 임신을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란 불안감에 휩싸이고 그게 큰 스트레스로 돌아올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말하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 스스로의 마인드 컨트롤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누가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한동안 임신을 하고 나서도 그 무거운 마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진짜 내가 두 아이를 낳아 두 손에 앉아볼 수 있을까? 진짜 그런 날이 온 후에야 괜찮아질 것 같았다.
안정기에 접어들어 쌍둥이 임신을 했다고 임밍아웃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두배 이상의 축하를 해주었다.
그중 진짜 친한 친구들은 어떻게 쌍둥이가 된 건지 묻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그동안 힘들었다고 투정 부리다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간 말도 못 하고 힘들었겠다고 나를 토닥여주었다. 그래서 내가 모임에 못 나가는 일도 많고 자주 못 만나게 되었구나 하고 이해해주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또래라면 말 못 하고 같은 상황일 수 있어서 속시원히 이야기했다.
하지만 의외로 나와 관계가 느슨하거나 대면 대면한 남자들이 직접적으로 "시험관 아기 시술했어요? 계획된 거예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질문이 기분 나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생활 같은 이야기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는 것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이미 아기들을 키우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진짜 단순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일 테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게 왜 궁금하지? 시험관 아기 시술했다고 하면 그다음 질문은 뭘까? '난임이었어요? 일까? 아니면 '내가 어디가 문제인지, 남편이 어디가 문제인지가 그런 게 궁금한 걸까?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아픔이 떠올릴 수 있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다그치며 묻는 건 아닌지 생각이나 해본 걸까?
내가 임밍아웃을 하던 시기에 남편의 지인들이 몇 명 임신을 했는데, 회사에 임신 소식을 알렸더니 퇴사를 종용했다는 말을 듣고 너무 안타까웠다. 나는 이렇게 축하받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그때의 그녀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내가 운이 좋은 건가? 여전히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구나.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임밍아웃은 다행히도 내게 아픈 기억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픈 기억이 될 수 있는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변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늦긴 했지만 너무 많이 늦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