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과에 가서 혈당 검사를 하는 날이다. 검사는 간단한데 공복 시간이 중요하다. 진료 시간이 오후 4시만 가능해서 검사를 오후 3시에 해야 한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 1시간은 필요하다고 했다. 검사 시에 최소 8 시간 공복 시간이 필요해서 아침 7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밤에 자면서 공복은 자신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오후 3시까지 아무것도 못 먹는다니 임산부에게 너무 가혹하다 싶었다. 남편이 아침 6시에 일어나 밥을 해서 차려줘서 눈을 감은 채 먹었다. 배가 나와서 소화가 되지 않아서 그런지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혹시나 너무 긴 공복이 무리가 될 것 같아 조금 먹었다.
병원에서 오후 3시에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했다. 병원이 커서 동선이 꽤 길어서 남편이 어디에선가 휠체어를 가지고 왔다. 나는 타는 게 더 쑥스러워 타지 않으려고 했는데 눕눕 생활만 해야 하는 내가 걱정스러웠나 보다. 나도 검사 때문에 또 배뭉침으로 산부인과는 가고 싶지 않아서 남편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몸을 맡겼다.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병원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밥을 먹고 진료를 보기로 했다. 밥을 먹는 내내 휠체어에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도 편하지는 않았다. 앉아있으니 배가 뭉쳐왔다. 어디에 누워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사람 많은 종합병원에서 나에게 줄 공간은 없었다.
몸이 불편해서 그런지 1시간이 더디게 흘러갔다. 드디어 의사를 만났다. 혈당 수치는 워낙 관리를 잘하고 있어서 자신 있었는데 소변 검사에서 케톤 수치가 높게 나왔다. 케톤은 또 뭔가 싶었다. 병원에 올 때마다 의학용어를 하나씩 알아가다니. 이렇게 아프면서 알게 될 걸 어렸을 때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될 걸 그랬다. 의사는 케톤 수치가 높으면 태아의 신경계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이보다 무서운 말이 있을까? 더구나 난 두 명인데... 탄수화물을 충분히 먹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혈당이 참 어렵다고 생각했다. 많이 먹어도 안되지만 적게 먹어도 안 되는구나.
다행히 좀 더 지켜보고 인슐린 주사도 맞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구나.
그래도 큰 일은 아니고 끝나서 다행이다 싶어 조금은 안심이 됐다. 지금처럼 하던 거에 탄수화물을 좀 더 먹으면 되겠지.
마음 편히 가져야지. 병원에서 지하 1층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다시 자궁 수축이 불안하게 오고 있었다. 나온 김에 산부인과에 들렀다 가야 할까?
산부인과로 가면 태동검사한다고 검사하고 대기하고 그러면 또 오히려 심해지는 거 아닐까? 무엇보다 입원이 너무 싫은데. 집에 가서 좀 안정을 취해 보기로 했다.
집에 도착해 ‘아 드디어 끝났다. 쌍둥이들아 고생했다. 어서 쉬어야지.’
얼마나 잤을까? 배가 다시 뭉쳐오는 주기가 빈번해졌다. 가진통 앱으로 진통 주기를 30분 동안 체크했다. 심호흡도 잘해보고 안정을 취하려고 애를 썼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무래도 산부인과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이 저녁시간이라 또 굶겠지 싶어서 간단하게 남편이 닭가슴살과 야채를 넣어 호밀 또띠아에 돌돌 말아 닭가슴살 랩을 만들어주었다.
우리가 우려했던 내과 병원에 가서 검사하다가 자궁수축으로 산부인과 가는 거 아닌가? 했는데, 진짜 또 가야 하다니.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우리는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을까? 저번 퇴원 후 혹시 몰라서 병원에서 필요한 물품을 다 풀지 않고 가방에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 가방만 들고 다시 병원에 가면 된다.
항상 저녁 시간이 되면 배가 뭉쳐서 진료가 끝난 시각이면 분만실 센터로 가야 한다. 우리 부부는 이제 아주 능숙하고 일사 분란하게 짐을 챙겨 병원으로 간다. 혹시 태동 검사가 길어져 배고플까 봐 간단한 과자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어머, 산모님 또 오셨어요? 에고. “
“네. 또 왔어요.”
간호사가 나를 분만실 센터 앞 문에서 맞아주었다.
분만실의 간호사를 보통 수술 당일에 한 번이나 볼 까할텐데 난 출산 전부터 이미 여러 명의 간호사가 꽤 얼굴이 낯이 익다,
교대 근무도 많아서 시간대마다 간호사가 다른데도 이제 웬만한 분만실의 간호사는 다 만나 본 것 같다. 내 이름 확인은 하지만 그들도 나를 알고 나도 그들을 아는 사이가 되었다.
“아직 임신 27주라서 주수가 많이 남았는데 걱정이네요.”라며 간호사는 걱정을 하면서 태동검사를 위한 준비를 했다.
이제는 간호사가 준비하려고 하면 미리 화장실도 다녀오고 누워서 배를 보인다. 아이들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게 위해 찾을 필요도 없이 배를 가리키며 “저번에 여기랑 여기에서 들었어요.”라며 내 시간과 간호사의 시간을 단축하는데 협조를 한다. 역시나 가진통 주기가 잦다. 의사는 자궁 경부 길이를 재보고 좀 짧아졌지만 아이들이 지금 나올 단계의 길이는 아니라고 했다.
일반 포도당 수액을 맞으며 안정을 취해보기로 했다. 내 머릿속은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오늘은 집에서 자고 싶다.’ 갑자기 모든 신들을 찾으며 눈 감고 빌어본다.
그때 오늘 나를 맞아주었던 간호사가 다가온다. 오늘은 내 담당은 아닌 것 같은데 참 친절하시다.라고 생각했다.
“산모님, 좀 어떠세요?”
“아까보단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요.”
“산모님 저 오늘 출근 마지막 날이에요. 이따가 교대할 때 산모님께 인사 못 드릴 것 같아서 미리 왔어요.”
라며 링거 맞은 내 손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아 정말요?”
평범한 환자였을 나에게 이런 인사까지 하는 상황에 조금은 당황해서 제대로 된 말을 못 했다.
“산모님, 그만두면 가장 생각 많이 남는 산모님일 것 같아요.
이제 출산 전까지는 분만실에 제발 오지 마세요.”
'가장 생각이 많이 생각나는 산모님.'
이 간호사의 이름이 뭐였을까? 가슴에 찬 명찰을 보니 “윤희”였다. 난 이름조차 몰랐었는데.
그녀와 함께 이전에 나누었던 대화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산모님 고생스럽긴 해도 저도 쌍둥이 임신하고 싶어요.”
“에고 너무 힘들어요. 그냥 한 명씩 낳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수액을 꽂을 때도 조심스럽지만 나를 배려해주며 아프지 않게 한 번에 잘 꽂아주어서 참 고맙다 생각했다. 나는 그 간호사를 평소에도 참 친절하다고 기억했는데, 그 간호사는 나의 어떤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 걸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간호사가 가고 나서 따뜻한 말 한마디 더 못해준 게 침대에 누워서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뭉클했다. 그리고 그 간호사 역시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분만실은 시시각각 바빴다가 소강상태였다가를 반복했다. 간호사들은 매우 바빠 보였고 입원실의 간호사들보다는 좀 더 터프하다고 표현해야 할까? 거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나를 기억해주고 걱정해주는 간호사가 있었다니 참 고마웠다.
분만실 옆 태동 검사실에 누워 ‘오늘은 집에 갈 수 있을까? 우리 쌍둥이들은 괜찮은 건가?’ 혼자 생각하며 두려웠는데 생각해보니 참 따뜻한 공간이었다.
그래도 병원에 있으면 집에서 온갖 불안한 마음보다는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언제든 조치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니깐.
Photo by Martha Dominguez de Gouveia on Unsplash
차가운 수술실처럼 정이 가지 않던 이 공간에 또 추억이 쌓이고 정이 쌓인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있었으니.
분만실의 여러 당직의사와 간호사들과 함께 내 임신기가 함께 지나가고 있다. 더 많은 위험이 생길수록 쌍둥이와 나와 내 가족을 위한 도움의 손길이 많아진다.
태어나기도 전에 많은 도움을 받는 우리 쌍둥이들아, 기대에 부흥하게 둘 다 건강하게 태어나자!
커버 사진 출처 : Photo by Sharon McCutcheo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