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 엄마와 손주를 보는 주변의 지인들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베이비붐 세대였던 엄마는 엄마 주변에서는 다들 젊을 때는 먹고 사느라 고생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이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있을 만해지니 자식들의 자식들을 보느라 고생을 많이 한다고 안타까워하시면서 엄마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30년 넘게 시아버지도 모시고, 우리 가족도 알뜰히 챙기면서 외할머니인 엄마의 엄마도 일찍 쓰러지셔서 병 때문에 오래 간호까지 하느라 이제 좀 쉬고 싶다고 하셨다. 나도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 때문에 내 자식은 내가 키워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결혼 전이라 육아까지는 깊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엄마의 생각보다 결혼이 늦어지자 이제 그만 결혼하라고 조금씩 조급해하셨다. 나는 결혼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일을 자리 잡고 돈도 모은 후에 안정적일 때 결혼이 하고 싶었다. 아기도 낳고 키우려면 어느 정도 기반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여러 해 동안 했다.
시간이 계속 흘러가자, 엄마는 답답했는지 "애는 내가 키워줄 테니까 너무 늦게 결혼해서 애 낳으려면 힘드니까 빨리 결혼해서 애 낳아."라는 말을 했다.
"에이 내 자식은 내가 책임지고 내가 키울게. 엄마 걱정하지 마. 엄마 지금까지 고생했는데 애까지 키우면 어떡해."
"애가 언제든 생긴대? 요즘은 갖고 싶어도 못 갖는 사람들이 많잖아."
내가 난임인 시기엔 천주교 신자인 엄마는 우리에게 아기가 찾아오게 해달라고 매일 새벽 100일 기도를 집에서 하고 계신다고 했다. 새벽 100일 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 마쳤는데도 아기가 찾아오지 않아서, 또다시 100일 기도를 하셨다고 했다. 쌍둥이 임신을 알게 된 후, 나는 엄마가 100일 기도를 한 번 했으면 한 명이 왔을 텐데, 두 번 해서 아기가 한꺼번에 두 명이 찾아왔다고 했다. 나는 무교라서 기도의 효능은 잘 모르지만, 엄마의 간절함 덕분에 우리에게 쌍둥이가 왔다고 엄마에게 늘 고마워한다.
임신이 기뻤지만 쌍둥이를 어떻게 동시에 키워야 할까? 에 대해 막막함이 있었다. 엄마는 "너는 일 계속 해. 애는 엄마가 봐줄게."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아니야, 내가 키워야지."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랑 아빠가 키워야지 하는 의지는 어느샌가 쏙 들어갔다. 쌍둥이 엄마이면서 워킹맘은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쌍둥이를 키운다고 해서 일을 지금 그만 두기엔 지금까지 노력한 것과 앞으로의 미래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친정 엄마를 의지하기로 했다.
주변에 지방에 계신 엄마가 당분간 우리 집에 오셔서 쌍둥이를 봐주시기로 했다고 하자, 다들 이미 아이들을 키워본 사람들은 친정 엄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 명도 힘든데, 두 명을 어떻게 봐주셔~. 도와주시는 분을 한 분 꼭 써야 해. 아니면 엄마 병나신다." 혹은 "내가 아는 사람도 친정 엄마가 애 봐주셨는데 애 보신다고 관절이며 허리가 아프셔서 결국 수술하셨어."라는 말을 들으니 나마저 엄마의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 란 생각에 마음이 하루도 편치 않았다.
나는 육아를 해본 적도 없고 간접적으로도 잘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힘이 들지 사실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육아는 힘들 것이라는 것이었다. 쌍둥이 육아라면 도대체 얼마나 힘들까?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을 자주 하니, 남편 없이 혼자 집에 있는 내가 엄마는 걱정이 되는지 전화가 자주 왔다. 밥은 먹었는지, 배는 괜찮은지 묻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했다. 사실 나도 내가 불안했다. 갑자기 아프면 택시 타고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런 일이 없기만을 매일매일 쌍둥이들에게 부탁했다.
엄마는 내가 조리원에서 나온 후에, 지방에서 우리 집으로 당분간 사실 짐을 싸서 올라오시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30주 넘어가서는 불안한 하루가 계속되니 하시던 일을 그만 하기로 하고 당분간은 엄마 집과 우리 집을 왔다 갔다 하기로 결정했다. 엄마가 온 지 하루 이틀쯤 지났을까? 나는 다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코로나 19로 엄마가 병원에 오래 머무는 게 나는 찜찜했다. 엄마가 혹시 나 때문에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느라 전염되면 어쩌나 해서 너무 불안했다. 침대에 누워서 엄마 걱정까지 되었다.
남편도 없고, 나도 없는 우리 집은 아직 쌍둥이를 맞을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나오자마자 바로 쓸 손수건들은 겨우 사놓기만 했지 세탁 한번 하지 않았고, 사야 할 것도 제대로 사지 못했다.
"엄마가 출산 준비해줄 테니까 마음 편하게 가지고 사야 하는 것 택배로 보내 놔. 엄마가 세척이나 세탁 다 해놓을 테니까."
"엄마 하나도 안 해놔서 그거 다하려면 힘들 텐데 어떡해."
"어떡하긴 어서 해야지."
결국 출산 준비는 엄마가 다 했다.
시집간 딸은 결국 다시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라며 말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결국 나에겐 엄마가 필요했다.
나는 예전에 엄마에게 종종 물었다.
"엄마는 일 그만 하면 뭐하고 싶어? 뭐 배우고 싶은 거 없어? 하고 싶은 거? 이제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엄마는 이제 나이 들어서 뭐 배우고 싶다기보다는, 성당에서 봉사활동 많이 가는데 봉사하면서 살고 싶어."
"결혼해서 그렇게 평생 고생만 했는데, 또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
'엄마는 언제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까? 늘 가족을 위해서 희생만 하는 걸까?
이제 희생 그만 하고 자식도 다 키웠으니 엄마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또 거기에 짐을 얹었다.
엄마에게 마음의 빚이 많다.
엄마는 염색을 조금만 늦게 하면 흰머리가 너무 빨리 자라서 보기 싫다고 저녁에 집에서 염색을 했다.
나이가 드니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했다.
엄마는 오늘도 나를 위해 하루 종일 몸을 바삐 움직였다.
내가 엄마의 시간을 갉아먹는 건 아닐까? 란 미안함이 든다.
쌍둥이들이 걸어 다니고 코로나 19가 종식되면 엄마가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게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
엄마가 안 먹어본 것, 안 해본 것, 안 가본 곳에 시간을 보내고 싶다.
엄마의 시간에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야겠다. 딸로, 엄마로, 아내로.
커버 사진 출처 : Photo by Phil Hearing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