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이 글은 2020년 2월 시기의 입원 경험을 쓴 글입니다.
2020년 1월부터 '중국 우한 폐렴'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설마 중국에서 시작된 게 한국까지 오겠어? 란 생각을 비웃듯이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국내에서도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는 '코로나 19'로 불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해외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이 걸려서 그 상황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뉴스에서 연신 확진자가 늘어난다고 했다. 그 사이에 나는 산부인과 병원에 조산기로 입원했다가 퇴원을 자주 했다.
1월에 갑자기 입원을 했을 때는 마스크를 따로 챙겨 오지 않았는데, 병원에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하나둘씩 점점 늘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에 나도 간호사에게 이야기해서 마스크를 몇 장 받아서 쓰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커튼 안의 침대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라서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게 고민도 되긴했지만 안쓰면 마음이 불편해서 쓰기 시작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쓰지만 환자들은 아직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2월이 되자 병원의 상황이 급격히 변했다.
2월에 대구에서의 코로나 유행이 번지자 병원에서도 조치가 취해졌다. 외래 진료를 보기 위해서는 방문자는 모두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입구에서 체온을 재고, 손을 소독 후에 방문 기록을 남긴 후에 진료를 보는 곳으로 갈 수가 있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 동행하던 산모들도 이젠 동행자들은 병원 외부에서 대기하고 산모만 의사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매번 대기하며 앉을 곳 조차 없고 아이들이 뛰어다니곤 해서 북적북적 했던 곳이 마치 곧 망하기 직전의 병원처럼 썰렁했다. 진료를 미룬것인지 진료 대기중인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내가 긴장되어서 그런지 마스크를 쓴 사람들도 왠지 모르게 긴장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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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가 오기 전에 입원을 했을 때는 주말이 되면 온 가족이 입원 중인 산모나 환자를 방문해서 병실 밖의 복도 휴게실이 시끌벅적했다. 평일에도 저녁시간이면 외부 음식을 시켜 아이나 가족들과 함께 먹는 모습이 흔했다. 병원 입원실이지만 보통의 병원처럼 아픈 환자들이 많아서 우울하거나 조용한 분위기가 아닌,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 축하하고 기분좋은 산부인과의 입원실의 분위기는 가볍고 들떠있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코로나 19 관련 조치가 취해지자 정말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급변했다.
아침부터 간호사가 오더니 나에게 A4용지를 건네며 이제부터 방문자 명단과 방문 시간을 다 기록해야 한다고 했다.
입원실이 정말 너무 조용해졌다. 보호자 1명만 출입이 가능한데 산모와 환자들을 위해 알아서 가족들이 최대한 짧게 머무르고 돌아가거나 거의 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으면 아침과 낮에는 입원한 사람들만 커튼 안에서 조용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5인실에서 머물렀는데 다들 자는지 너무 조용해서 때로는 내가 완전히 혼자 있는 느낌까지 들었다. 저녁 시간이면 퇴근 후 들른 남편들과 저녁 먹는 시간이 유일하게 인기척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가끔 음식을 먹다가 사래라고 걸리면, 이 상황을 모르는 옆 칸에서는 내가 코로나에 걸려 기침을 계속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이라도 할까 봐 최대한 숨죽여 기침 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나는 트랙토실 한 사이클이 끝나고 자궁 수축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고 하자 의사는 코로나 19 때문에 병원에 머무르는 게 더 불안할 수 있으니 가능한 퇴원 하라고 권유해서 퇴원을 했다. 집에 돌아가서 그다음 날 또 자궁 수축이 오자 코로나 19로 병원에 가는 게 정말 많이 망설여졌다. 자궁 수축 완화에 도움이 될까 해서 일정한 시간에 먹어야 하는 혈압약을 조금 당겨서 먹어보며 안정을 취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했다. 하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또 병원을 가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이전에도 입원하는 건 싫었지만, 코로나 19로 더욱더 입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뉴스에서는 코로나 19 확진자가 다녀간 요양병원과 대학병원들이 폐쇄되었다. 여기저기 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폐쇄되었다. 언제 내가 있는 이 산부인과도 폐쇄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가끔은 자고 일어나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면 병원이 폐쇄되었는데 나만 자느라 몰랐던 건 아닐까? 란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가기도 했었다. 만약 우리 병원이 폐쇄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급격하게 확진자가 늘어나면 임산부인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우리는 3명의 목숨이 달린 문제인데 라고 생각하니 걱정이 정말 폭발하고 있었다.
산모들이 대부분인 산부인과보다는 다양한 병과 연령이 다니는 대학병원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아기들에게 문제가 생겨 대학병원으로 긴급 전원 되면 어떻게 하나? 란 생각에 대안을 떠올리려 해도 뾰족한 수는 없다.
뉴스에서는 급격히 늘어난 환자에 병실이 부족하고, 집에서 대기 중인 확진자가 사망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임산부가 확진이 돼서 치료 중이라는 기사를 봤을 때는 정말 내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하루는 병원에서 에어컨 수리를 위해 외부 사람들이 와서 하루종일 병실마다 돌아다니자, 보호자들이 코로나19 시기와 추운 겨울에 굳이 에어컨 수리를 지금 해야 하는 거냐고 항의를 해서 한바탕 시끄러웠다. 나도 항의는 하지 않았지만 그 의견에 동의했다.
코로나 19가 주는 예민함과 공포감이 스물스물 우리의 일상을 위협했다.
병실마다 개인 침대 옆에 손소독제가 놓여있어서 자주 쓰고, 손도 자주 씼었다. 그것이 내가 나와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입원실에서 누워서 기사를 보는 건 너무 괴로웠다. 애써 잊기 위해 책을 많이 보기로 했다. 자고 나면 아무 일 없던 일처럼 없어졌음 하고 몇 날 며칠을 보냈지만 점점 상황은 심각해졌다. 하루 종일 코로나 확진자 발생과 동선으로 알림이 연신 울렸다. 아무 곳도 돌아다니지 않는 나는 정신 건강을 위해 알림을 껐다.
어렸을 때 본 드라마에서는 6.25 전쟁이 갑자기 터져서 대피 중이던 만삭의 임산부가 자주 나왔었다. 전쟁 중에 아기가 나온다고 생각하면 병원도 가기 힘든데 진짜 막막하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마치 내 상황이 그 드라마에서의 임산부 같다.
'혹시나 누군가 병원에서 코로나 19에 걸린다면?', '갑자기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나를 불안해할 텐데.'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만약에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많은 임산부와 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임산부가 많은 산부인과는 성인은 한 명이지만 모두 둘 이상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 제발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임신을 했는데, 100세 인생이라고 하면 고작 10개월인데 역사상에 남을 전염병이 돌고 있다. 백신도 없고 치료제도 없다. 왜 이런 일이 이때 온 걸까? 라며 속상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만 힘든 시기가 아닌 우리 모두가 힘든 시기다. 언제나 그렇듯이 잘 이겨내서 이 전쟁 같은 바이러스가 지나가 우리 일상을 되돌려주었으면 간절히 빌어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