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는 오늘이 가장 소중하다

This is my HAPPY place.

by yololife

오늘도 새벽에 내 병실 칸에 불을 켜고 간호사가 들어온다. 뱃속의 태아들의 심장 박동 수는 120~160로 정상이다. 내 체온도 정상체온이고, 혈압도 정상이다. 공복 혈당도 정상 범위를 넘지 않았다. 오늘도 이렇게 시작한다.

공복 혈당 체크 후에 새벽 5시도 안되었지만 무설탕 두유를 한잔 마신다. 초음파 상으로 평균 태아의 3주 정도 작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컸으면 해서 눈도 뜨지 않은 채 들이켰다. 배가 점점 불러올수록 새벽에도 화장실을 자주 간다. 자고 있는 다른 환자들에게는 시끄러울까 봐 미안하지만, 험한 꼴 보이지 않으려면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아침밥이 오는 8시까지 에어팟을 꽂고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는다. 병실마다 커튼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동안 하루 종일 읽고 싶었던 책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집에 있으면 책을 읽거나 무언가에 집중하면 자궁 수축이 와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누워서 자기만 해도 배뭉침이 있었는데 병원에서는 수액을 맞고 있는 동안은 아무렇지도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복도 쪽 침대여서 따뜻했지만 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모르고 하루를 보냈다. 입원 기간이 길어질 것 같아서, 창가 자리로 자리를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창가 자리는 조금 더 바람이 들어와서 춥지만 오늘이 어떤 날씨인지, 동이 트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새삼 행복감을 느낀다. 문득 고시원이 창문이 있는 방이 왜 보통 10만 원 정도 차이 나게 돈을 받는지 알 것 같다.


회사에 가기 전 남편이 병원에 들렀다. 아주 잠깐이지만 남편이 나를 위해 일찍 일어나서 병원을 들러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고, 마실 물도 떠다 주고, 병실이 건조해서 수건에 물을 적셔준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속삭이며 대화를 하니 연애 시절처럼 꽁냥꽁냥 하는 기분까지 든다.

옆 산모는 이미 첫애가 있어서 남편이 아이 케어하느라 들르지도 못해 영상통화를 하는 것을 보면 나는 그래도 남편 얼굴이라도 직접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밥은 산부인과라서 언제나 미역국이다. 미역국을 좋아하는데도 미역국을 매일 먹으니 조금씩 쳐다보기가 싫어진다. 하지만 뱃속의 아기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먹어보지만 반쯤 먹으니 너무 배가 불러온다.

병원의 밥, 반찬 그릇은 모두 사기그릇으로 되어있다.

한쪽 팔은 링거를 꽂고 있는 링거 폴대를 끌고 나머지 한 손으로 사기그릇을 들어야 하는데 몸도 무겁고 눕눕만 해야 하는 조산기 있는 산모에게는 너무 무겁다. 깔끔한 편이라 그릇이 남아 있는 것을 치우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얼마 후에 혈당을 체크하러 오는 간호조무사님이 그런 나의 사정을 눈치채셨는지 치워주시겠다고 하셔서 민망하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하다. 그리고 고맙다. 누군가의 배려에 마음이 1도 더 따뜻해진다.


병원밥 말고 다른 무언가가 먹고 싶다. 빵이 제일 생각나지만 당뇨에 빵은 최악이다.

차선책으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다. 남편이 퇴근길에 사 올 걸을 생각 하니 결정한 점심시간 이후로 설렌다. '서브웨이 샌드위치가 설렐 정도의 메뉴는 아니지 않나?' 생각이 들다가도 특식 같은 외부 음식은 늘 간절하다.

칼퇴근을 하고 온 남편에 손에 들른 저녁을 함께 마주 보며 먹었다.

"임신성 당뇨 환자에게 진짜 서브웨이 샌드위치는 구세주야. 행복해~ 너무 맛있어." 이런 사소한 게 행복하다니.


내일 회사를 출근해야 할 남편이 분주하다. 냉장고 정리도 해야 하고 하루 동안 내가 마셨던 텀블러도 세척해야 하고, 나는 가만히 누워서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주문이 많다.

9시면 입원실은 조용한 분위기를 위해 병실에서 알아서 불을 끈다. 짧았던 남편과의 시간을 뒤로하고 남편은 집으로 가고 나는 다시 잠을 청한다.


Photo by Artem Beliaikin on Unsplash



오늘 하루는 아무 일이 없었다. 자궁 수축이 오지 않아 태동 검사를 하러 가지 않아도 돼서 병실에서 온전히 쉴 수 있었다. 왼쪽으로 누워도 불편하고 오른쪽으로 누워도 불편한 몸이다. 침대는 각도 조절이 되지만 효과가 없다. 걸어서 산책하러 나갈 수도 없다. 불편한 침대에서 하루를 보내고, 지루한 것 같은 1분 1초를 보내지만 오늘 하루 쌍둥이들이 뱃속에서 조용히 커가고 있다. 세상 구경을 빨리 하고 싶어 나오려고 하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쉴 시간을 충분히 주려고 그런 거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면 클 때까지 이런 무료한 시간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순간 모든 게 감사한 생각이 든다. 고마운 남편과 친절한 간호사들, 맑은 하늘, 마음의 양식인 책이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하루다.

아무 일 없는 병원에서의 오늘 하루도 최고의 하루였다. 아무 일 없는 오늘이 가장 소중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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