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안 해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인생책이 된 켈리 최 회장의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를 읽은 후 남편에게 한 말이다.
난 왜 그토록 사업을 하고 싶었을까?
무엇보다 파리에서 도시락 사업으로 수천억 대 자산가가 된 켈리 최 회장의 이야기가 나를 강하게 흔들어 놓았다. 게다가 <부의 추월차선>과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까지 읽고 나니, 부자가 되려면 결국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신처럼 자리 잡았다. 나도 잘 팔리는 아이템을 찾아 대박을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설렘에 가슴이 뛰었다. 교단을 떠나 새 인생을 시작하는 내게 사업은 자유와 가능성의 또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다.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켈리 최 회장님과의 100일 챌린지에 참여했고, 성공한 사람들이 가졌다는 좋은 습관을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또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속 ‘사업 공부를 위한 책 100권 리스트’에 있는 책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매일이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선 사업을 시도하기 위해 초기 비용이 적게 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류캔두잇님의 스마트스토어 강의를 들었고, ‘쿠팡 위탁판매’라는 방식이 있다는 걸 알고 유튜브를 찾아가며 공부했다. 배운 건 곧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그때 내 인생에서 없앤 두 단어가 ‘조만간’과 ‘언젠가’이다. 지금도 이 두 단어는 의도적으로 쓰지 않는다. ‘지금 우선 공부부터 하고 조만간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임하면, 또다시 시작이 한참 미뤄질 것 같았다.
스마트스토어 강의에서 사업자등록증 발급 이야기를 들은 날, 곧바로 사업자등록증을 신청했다. 처음이니 간이과세자로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목표를 크게 잡고 싶어서 일반과세자로 냈다. 책에서 읽은 ‘내 생각이 내 한계’라는 말을 믿었기에 그렇게 하고 싶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개설하고, 중국 도매 사이트 1688에서 판매할 물건을 구매했다. 그때가 여름이었기에 크리스마스 시즌에 사용할 수 있고, 선물하기 좋은 물건을 찾고 싶었다. 내가 팔면서도 기분 좋을, 그런 물건을 팔고 싶었다.
그렇게 찾아낸 물건이 트리 전구처럼 불이 켜지는 니트 모자,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산타, 루돌프, 눈사람 모양 브로치와 니트 가방이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거리에서 불빛이 반짝이는 모자를 쓰고, 브로치로 장식한 니트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떴다.
1688 사이트에서 중국 도매업자와 영어로 채팅을 주고받으며 직접 주문을 진행했다. 일주일쯤 뒤 주문한 물건을 받으니 마치 내가 무역상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네이버에서 저렴하게 제공하는 스튜디오를 빌려 셀프로 제품 사진을 찍었다. 커다란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도 제법 그럴싸하게 나왔다. 사진을 편집해 스마트스토어 상세 페이지를 만들어 올리고, 스토어 인스타그램 계정도 개설해 오픈 이벤트를 열었다. 네이버 인플루언서를 찾아 협찬 메일을 보내고 수락하는 분께는 무료로 물건을 보내기도 했다. 네이버 광고와 인스타그램 광고까지 직접 진행했다. 강의에서 배운 건 빠짐없이 실행으로 옮겼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몇 개 팔지도 못했는데 크리스마스가 지나가 버렸고, 중국에서 구매한 물건은 고스란히 재고로 남았다. 판매 기간이 짧은 시즌 제품, 대중이 원하는 물건이 아닌 내가 팔고 싶은 물건을 선택한 게 실패 원인이었다.
스마트스토어와 동시에 쿠팡 위탁 판매도 시도했다. 도매 사이트에서 팔만한 물건을 골라 쿠팡에 올리고, 주문이 들어오면 업체가 직접 배송해 주는 방식이었다. 내가 재고를 떠안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잘 팔릴만한 가격 경쟁력 있는 물건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도매 사이트에서 물건을 골라 꾸준히 쿠팡에 올렸다.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인바디 체중계 주문이 눈에 보이게 늘기 시작했다. 드디어 잘 팔리는 아이템을 찾았다는 기쁨에 일하는 게 더 신이 났다. 그러더니 체중계로만 한 달 매출이 200만 원을 넘어섰다.
안타깝게도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바디 체중계 수급 문제로 공급처와 통화할 일이 있었다. 공급처에서 “어디서 판매 중이세요?”라고 묻길래, 별생각 없이 “쿠팡이요.”라고 대답했다. 그 한마디가 엄청난 실수였음을 곧 깨달았다.
매일 들어오던 체중계 주문이 며칠 뒤 갑자기 0건이 됐다. 혹시나 한 생각으로 쿠팡에 들어가 보니 같은 제품이 내가 받는 가격보다 더 싸게 판매되고 있었다. 심지어 광고까지 붙어서.
그제야 깨달았다. 온라인 판매는 살벌한 정글이라는 것을. 세상이 내 마음 같지만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가격을 통제할 수 없으면 영원한 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몇 달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자 깊은 허무함이 밀려왔다.
이 경험을 계기로 제품을 직접 만들어 팔아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아이템을 물색하던 중 화장품 제조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알게 되어, 화학과 출신 직원을 두고 화장품 제조 판매에 도전했다.
나 같은 40대가 쓸 수 있는 노화 방지용 화장품을 만들고 싶었다. 줄기세포 원료까지 넣은 기초 화장품 3종을 만들었다. 제품은 좋았다. 당시 내가 만든 화장품을 써본 친구들은 지금도 그 화장품 다시 안 만드냐고 물어볼 정도다.
하지만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판매가 문제였다. 우리나라 화장품의 질은 이미 상향 평준화되어 있었고, 결국 마케팅 싸움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판매는 또 다른 영역이었다. 내가 인플루언서여서 구매해 줄 팬덤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쿠팡에서 판매하기에는 가격 경쟁력이 없었다.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은 팔리지 않는 현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이 시기는 사업가가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도전을 그야말로 원 없이 해본 시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건 명확했다. 사업은 내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는 사업이 안 맞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 마침 김민식 작가님의 <매일 아침 써봤니?>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사업을 해서 돈을 벌려면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나의 욕망과의 괴리를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
세상에 비위를 맞추고 휘둘리는 느낌이 싫었다.
저축이나 투자는 내 욕망만 조절하고 통제하면 되니까 이 길이 편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보다 나를 설득하는 게 훨씬 쉬웠다.”
읽는 순간 ‘이건 내 마음이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이 나는 사업보다 투자가 더 맞는 사람임을 인정하게 했다. 하고 싶은 시도를 모두 해보았기에 미련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 주 수요일 계속됩니다. 많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