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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가족화

Fishes Family Drawing

물고기 가족화(Fishes Family Drawing)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느낌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서 가족 간의 역동성과 가족의 성격 특성을 파악해 보는 그림검사다.


내가 배우고 있는 미술심리치료 시간에는, 함께 배우는 수강생들(성인)과 각자 그린 그림들 몇을 공유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영어수업 초등학생들에게 물고기 가족화를 그려보게 했다.


제목 :  Fishes family Drawing.


물고기 가족화를 그리기 전에, 영어단어 몇몇을 함께 더하고 가족에 대한 소개를 영어로 해보자 했던 시간.


"어항에 물고기 가족을 그립니다. 가족이 물고기로 변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물고기 가족이 무엇인가 하고 있는 그림을 그리세요. 그리고 어항 속에 꾸미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자유롭게 표현하세요."


모두 똑같은 평수의 어항을 갖게 되고, 도화지 위에 그려진 그 어항 위에 가족들을 물고기 화하여 그리기만 하면 되었다.


어항 속 물고기 세 마리에서 다섯 마리쯤 들어가겠지.

그림 실력이 출중하지 않아서라도, 물고기 그림은 거기서 거기겠지.

거기에, 물풀 몇 가닥, 조약돌들...


천편일률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물고기 가족화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다양하다 못해 저마다의 개성들로 톡톡 튀었다.


그리고 레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을 실감하게 했다.





성인 수강생들 중 어느 누군가의 남편은 어항 바닥 구석에 바짝 엎드려있는 넙치로 표현되었고 소파에 시체처럼 누운 채 검은색으로 색칠되어 있었다.


어느 초등학생 아빠 물고기 입엔 술이 들려있었다. 거대한 사이즈로, 괴기스러운 이빨을 드러내던, 물고기인지 괴물인지 모를 그림으로 그려진 아빠, 할머니 물고기에 뜯기고 있던 아빠. 하지만 아빠 물고기가 아예 없는 어항도 여럿이었다.


아빠 물고기 못지않게 존재감이 저마다 달랐던 건 자기 스스로의 모습이었는데... 무지개 물고기나 열대어처럼 화려하게 꾸몄겠지...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8세~ 13세 아이들이 표현한 나, 물고기는 밝고 발랄하지 않았다. 물풀 사이에 숨은 (나) 물고기, 물고기도 아닌 작은 돌덩이로 표현된 나. 물고기가 아닌 어항 위에 손가락을 넣기 일보 직전인 나로, 잘린 집게손가락으로만 드러난 나도 있었다.


그럼 이 연령대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어떤 물고기로 그렸을까. 물고기인 와중에도 가족들에게 등을 돌린 채 싱크대에 갇혀 설거지 중인 처지의 물고기. 남편과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헤엄치며 커다란 물방울 방울방울을 뿜어내는 물고기. 유유자적 춤추듯 헤엄치는 물고기가 드물었다.






올망졸망 작은 어항 속, 귀여운 물고기들은 다 어디로 갔나. 색깔까지 더해지니 음침하거나, 괴기스럽거나.


가벼운 마음으로 어항 그려진 A4용지 한 장을 건네었다가 50장이 넘는 갖가지 물고기 가족화를 받아 들고 마음이 꽤나 착잡해졌다.






독특함이 묻어나던 어항의 부분 부분에 대해 물을 때마다 측은함이 일었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몇 건네었다가 생각보다 무거운 대답만 넘겨받았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반응은 멋쩍은 마음에 건네는 칭찬뿐이었다.

선생님, 쓰담쓰담해 주세요


그리고 가까스로 찾아낸 칭찬거리를 건넸다가 예상치 못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받아 들었다.


언젠가 "너 그러면, 아빠한테 이른다!" 친구의 장난 어린 으름장에, 작은 두 손을 싹싹 빌며 "제발 그러지 마" 사정을 하던 아이였다. 말로만 내뱉었던 칭찬 그 이상을 요구하던 그 말에, 말없이 머리를, 등을 톡톡톡  드려주었다. '신체접촉의 최소화'에 주의하며.





모두들에게 안온하고 쾌적한 어항 속이었으면 좋으련만. 오색찬란한 빛깔의 지개 물고기까진 아니더라도 저마다 영롱한 빛들로 밝기라도 했다면 좋으련만. 갖가지 사연들로 넘쳐나던 작은 어항들은 허탈함만 남겼다.


사람 사는 건 결국 거기서 거기인 건가. 물고기의 모습들 하나로 제각각의 불행들을 짐작할 수 없을 일이었지만 물고기 가족화가 뭐라고, 이 어항 하나가 쾌적하지 못했다는 게 씁쓸했다.


매 시간 시간, 이 올망졸망 귀여운 물고기들이 잠시라도 밝은 빛을 채워나갈 수 있도록 형식적이지 않는 칭찬을 건네기로 했다. 따듯한 온도의 말을 건네기로 했다. 그게 영어든, 비언어적 표현이든.


여러 어항들 속을 구경하다, 내 어항을 내보였다가

엄청 공들여, 인어공주를 화려하게 색칠하시던데... 인어공주는 뭔가요?


네 마리 물고기들 사이에, 인어공주 피규어가 뜬금없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우물쭈물,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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