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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다그치지 말아요.

영화 스틸 앨리스

쉽게 열어지지 않는 영화가 있다. '스틸 앨리스'같은 영화가 바로 그런 영화인데... 영화 속 주인공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알츠하이머 병'이라는 설정을 영화로라도, 간접적으로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화 속 상황에 매몰되고 우울감에 젖어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우리 현실도, 영화만큼이나 우울한데 굳이! 결이 다르지만 같다면 같을 그 우울감을 끌어당길 필요가 있을까.  


리사 제노바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스틸 앨리스'. 존경받는 언어학 전공 대학교수이자, 세 아이의 엄마가 조발성 알츠하이머 병을 진단받고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는 내용이다. 애초에 쌓아 올린 것들이 많았던 성공한 인생 속에서... 기억이 하나, 둘 사그라들고 희미해지며 왜곡되기까지 하는 일상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 은은하게 빛이 나던 사람이 체면조차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 치닫게 되는 것.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충분히 힘들 것임을 알 수 있는 그런 영화. 그동안 염두에 두지도 않고 제목만 훑곤 스쳐 지나갔었다.




오랫동안 서둘러 지나쳐가던 그 영화를 왜 이제야 열어볼 생각을 했던 걸까. 현실을 직시하고 나서 나라도 뭔가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나 다를까 가볍게 보진 못했지만 누구보다 지적이고 행복하던 한 사람에게 닥친 갑작스러운 비극이 못 견딜 만큼 무겁지도 않았다. 줄리안 무어의 명연기가 담백한 울림을 줘서 다행이었다.


극 중 앨리스가 알츠하이머 병 관련 학회에서 발표자로 나서면서 나누었던 말들을 공유해 본다.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이 이렇게 썼죠. '상실의 기술은 어렵지 않다. 모든 것의 의도가 상실에 있으니. 그것들을 잃는데도 재앙은 아니다.'


매일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평생 쌓아온 기억과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 이제 모두 사라져 갑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지옥 같은 고통입니다. 점점 더 심해지죠. 한 때 우리의 모습에서 멀어진 우린 우스꽝스럽습니다. 우리의 이상한 행동과 더듬거리는 말투는 우리에 대한 타인의 인식을 바꾸고 스스로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바꿉니다. 우린 바보처럼 무능해지고 우스워집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병이죠. 어느 병과 마찬가지로 원인이 있고 진행되며 치료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고통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나로 남아있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예전의 나로 남아있기 위해서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순간을 사는 것과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는 것. 상실의 기술을 배우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는 것.



그동안, 세상의 모든 나쁜 일들엔 어느 정도 인과응보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베이스가 깔려있다고 생각했었다. 우리에게 말도 안 될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진 그랬어.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고, 내 주변에까지 비극적인 일련의 사건들이 밀어닥치니... 그런 단어들로 설명되지 않는, 이해되지 않는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구나. 그럴 수도 있는 거였구나. 기가 막히다 못해 허망한 마음을 달래기보다 체념하게 된다.


그러나 저러나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에게' 생각하며 주저앉거나, 우울감에 젖어 들어 쉴 새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거나, 스스로를 다그치며 질책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눈물 없이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순간을 살라고 종용할 수 없지만 적어도 다그침과 몰아붙임으로, 마음까지 녹아내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영화 이야기까지 들먹거리며 주절주절 어렵게 꺼내보는 말이야. 누군가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것. 나눈다고 나눠보지만 좀처럼 덜어내지지 않아 시시때때로 미안함에 일렁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어렵지만 좀 더 담백한 말들을 준비하도록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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