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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점 위에 서있다. 멀리서 보면 작은 점일 테지만 저마다 발을 내딛는 섬의 규모는 제법 다르다. 그 점들이 종래에는 선이 되어, 이 선 저 선 이어질 텐데. 언젠가부터 도미노처럼 옆 사람이 쓰러지면 그 타격이 내게 오는 걸 견딜 수가 없고. 허락하지도 않은 다리를 무턱대로 내려 예고 없이 내 섬으로 들어오는 걸 참을 수가 없다.
그냥 너는 네 점 위에서만 서있어라. 각자의 점 위에서, 각자의 선을 지키고 그렇게만 우리서 있자. 가끔 필요한 때에, 마음이 동하는 날에, 서로 신호 보내고 왕래하자. 말하고 싶다.
제발 그 선을 넘지 마오.
제발 훅 치고 들어오지 마오.
마음대로 넘나들지 마시라고요!!!!! 쫌!
하지만 대부분 이 섬, 저 섬 제멋대로 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은, 자신의 발이 점 밖으로 넘어갔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 발에, 무례함을 싣었는지, 어리석음을 담았는지, 저도 모르는 악한 마음이 싣렸는지.
장례식장에서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면서 언성을 높이던 두 사람은 이번엔 술을 핑계 삼았던 걸까. 작정하던 마음을, 격앙된 톤으로 풀어냈다.
(형수는 왜 우리 형님, 장례식에도 안 오셨소!!!!!)
살아생전, 우리 아빠에게 밥 한 끼 사드린 적 없었던 사촌 동생이자, 엄마에겐 사촌 시동생이신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언니가 30년 전에, 나한테 그랬잖아요.....!!!!!)
엄마는 시댁에선 큰 며느리로 활동하는 와중에도, 친정에서는 셋째 딸이면서도 장녀 역할을 도맡아 했거늘. 30년 전 상처를 굳이 여기 장례식장에서 말씀하시는 연유가 무엇인 겐지.
엄마는 우리 집 살림보다 더 어려운 것으로 추정되었던 외삼촌과 외숙모네 살림을 늘 안쓰러워했다. 외할머니와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인 데다, 내 엄마는 내가 챙기면 된다 하여... 늘 홀로 계신 외할머니를 나서서 챙겼던 것도 엄마였다. 난 그때마다 기꺼이 드라이버가 되었다. 딸 셋에, 아들이 없어 속 끓였을 딸보다 더 애가 탔을 외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증손주를 싸매고서 말이다.
엄마는 시댁 사촌 동생의 질책엔, 그간의 사연을 주섬주섬 풀어내었고. 졸혼을 결심하고 살았다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올케의 악에 받친 컴플레인엔,
(내가 마치 학폭 가해자라도 되는 것 같네.
30년 동안 그럼 자네는 그 마음을 내내 품고 살았던가.)
말했다.
(학폭이요? 참 멀리도 가시네. 어떻게 지금 여기서 학폭 가해자 단어가 나와요?!!!!!)
나는 매일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내 귀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내 마음속에 괜한 곰팡이 하나 들였다가 어느새 몽글몽글 전체로 퍼지는 꼴을 보지 않으려 한다. 자기 행실은 인지하지 못하고 남의 감정에는 우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가여워하려고 한다. 다른 이의 악행에 도리어 상처 입어 내 마음이 곪지 않도록 애쓴다. 억울한 것들 투성이지만 비열함에 응하지 않기로 한다. 세상만사, 일일이 따지는 게 덧없어 발을 빼는 일이 늘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회피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저 내 점 위에 서있기로 했다. 위태로운 나를 다잡으며 그저 내 반경에서 내 할 일을 묵묵히 하기로 했다. 때때로 삭히는 마음에, 물을 주고 볕을 쪼인다. 내 섬 위의 작은 식물들이 짓밟히지 않도록, 메마르지 않도록. 그저 내가 서있는 테두리 안에서 안전하고 싶다. 다른 이의 선도 넘지 않되, 누군가 내 선을 넘어 침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생각지도 못한 기 막힌 일들을 요 몇 년 사이 가까이에서든, 멀리 서든 겪다 보니. 늘 긴장감에 사로잡혀있어 늘랑늘랑해지는 법을 잊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구나' 눈을 가늘게 뜨고 멀찌감치 보는 때도 늘어서. 적어도 내 안의 빛을 꺼트리고 푹 꺼지는 일은 없도록 애쓰고 산다. 어느 때라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걸 경험해 본 사람만이 가지는 감각을 이제는 장착하게 되었으니. 긴장감 안에 깊숙이 서려있는 맹수의 사나움이 언제 발현될지 모르나. 도발하지 않기로 했다. 그 어떤 것을 빌려서든.
그러니, 너희도 도발하지 말아라. 그 어떤 이름으로든. 그 어떤 이유와 핑계로든. 그 선을 넘지 말아라.
하지만 이어지는 하소연과 넋두리. 비아냥과 비난, 조롱이 오가는 말들 속에서 나는 호위무사의 검을 빼어들지 않았다.
(힘드시겠어요. 힘드셨죠.)
결국 들여다보면 뾰족한 말들 속에 꺼내어지는 건, 내 이 힘듦을 알아달라_아픈 마음이었을지도 몰라서.
(고생하셨겠네요. 엄마 (시누이)도, 외삼촌 (남편)도
쉬운 편이 아니지요.)
나도 잘 모르는 말들로, 성난 마음을 일단 내 덮었다.
내가 아는 엄마도 실제 쉬운 사람은 아니라서, 이미 말 끝에 삐딱함이 서렸기 때문이다.
(내가 일평생... 전주 이 씨 때문에!!!!!!!!)
김해 김 씨 장례식장에 와서 전주 이 씨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당최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지만. 호위무사의 날카로운 검은 이제 날이 제대로 서, 언제 빼어 들어도 너끈할 만큼이 되었지만. 나는 또 체념했다.
촘촘히 서있다 못해, 신호 하나 없이 훅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는. 가족과 친척이라는 이름의 이 관계도를 속 시원하게 끊어버릴 수 없는 나라.
거의 완벽하게 사람을 속이다가 전지전능한 어떤 사람에게 들켜 갈가리 찢겨 죽는 것보다 더한 망신을 당하는 것, 이것이 제가 내린 '존경받는다'의 정의였습니다. 사람들을 속여 '존경받는다'해도 어느 한 사람이 그것을 알아채고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에게 듣고 속은 것을 알았을 때 그때 사람들의 분노와 복수심이 도대체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쳤습니다.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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