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엄마에게 100일의 기적은 오는가

by 김여희

오랫동안 미용실에 가지 못해 산발인 머리를 하고서 깊이 잠자지 못해 퀭한 눈을 멍하게 뜨고 곳곳이 침이 묻어있던 옷을 입은 엄마. 점점 잃어가는 내 모습에, 벗어나질 못하는 육아 굴레에, 열정은 희미해져 갔다. 육아서적을 들여다보며 다짐했던 현명한 부모 육아법도, 덮은 지 오래였다. 똑소리 나는 육아는 나에겐 머나먼 이야기. 그저 생존 육아에 가까운 쌍둥이 육아였다. '난임 고생 끝, 기쁨의 육아 시작'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염치없게, 빈번히 무디 moody 했다.


난임 기간 동안 아이가 생기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원더우먼 엄마의 열정은 다 어디로 갔나. 너와 나의 연결고리, 아이들로 인해 환상의 궁합을 자랑할 것 같았던 부부의 관계란 왜 이렇게도 살벌해졌나. 모든 게 예상을 벗어나 두서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잘 짜인 아이들의 수면 패턴, 오차 없이 일정한 수유량, 체계가 잘 잡힌 육아 살림 시스템. 그 어느 것 하나 매끄러운 게 없었다. 날 구원해줄 이, 뉘신지.


빈번하게, 추억의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의 르넷의 넋두리가 떠올랐다.


(쓰레기나 버리고 아이 뒷바라지나 하려고 태어났나)


활달하다 못해 산만한 쌍둥이들에 눈물을 훔치던 르넷이, 더 이상 드라마 속 배우가 아니었다. 드라마에서 그려졌던 그녀의 고독과 절망감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하루 3-4시간 와주실 육아 도우미 선생님을 구하기로 했다. 남편이 없는 시간 동안 혼자서 쌍둥이를 케어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임 병원에 다니는 동안 넘치고 넘치던 혼자만의 시간들은, 이제 돈을 줘야만 살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다만 몇 시간이라도 온전히 혼자가 되기 위해선 돈을 써야 했다. 그래서인지 자유시간을 얻게 되는 순간부터 내 발걸음은 무척이나 바빠졌다.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의 휴식을, 최선의 만족감을 얻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호락호락 돈으로도 쉽게 살 수 없었던 자유시간. 일단 육아도우미 구인을 위한 ‘6하 원칙’ 설명에서부터 반응은 미지근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누가’. 대상을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태어난 지 100일도 채 지나지 않은, 것도 남매 둥이를 동시에, 외진 동네로, 단 3-4시간 케어. 수차례 거절을 맞보았고 3일 테스트 기간이 지나기 전에 끝이 났다. 결국 엄마가 있는 조건에서, 한 아이만 케어하는 몇 시간을 허락하신 이모님이 나타났다. 혼자서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이토록 그리워질 수가... 한 공간에서, 가족도 아닌 낯선 분과 육아 호흡을 함께 맞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민간 육아 도우미 알선 업체를 통해 두 분을 한꺼번에 구한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혼자가 되어, 홀가분함을 실컷 누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육아 도우미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도우미 1에게서, 4시간 중에 3시간 동안 아이 잠을 재웠다는 도우미 2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제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애들 잠을 계속 재우면 밤잠을 안자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계속 애를 안고 또 재우고, 또 재우려고만 하셨어요...)




KakaoTalk_20211201_153707775_01.jpg




초보 도우미 1이 못 미더워, 일부러 베테랑 도우미 2번째 분을 함께 고용했던 것인데 의외의 반전이 있었던 거였다. 민간 업체를 끊고 정부 사업으로 운영되는 ‘아이 돌봄 서비스’를 통해 아이돌보미를 구해봤지만 사정은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 돌봄 서비스 비용은, 최저임금 인상률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으로 올랐다. 1명의 아이를 돌보는 데 드는 시급이 그때 당시, 7,800원에서 9,650원으로 오른 것이었다. 쌍둥이 돌봄의 경우, 2배까지는 아니지만 역시 요금이 추가되니 그나저나 다 돈, 돈, 돈이었다. 그리고 4시간 이상 서비스 이용 시 근로권 보장 및 근로기준법에 따라 일정 시간 휴게시간을 줘야 했다. 휴게시간을 위해서 친 인척이 돌봄을 대체하거나, 다른 대체 아이돌보미를 파견받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100일도 채 안 지난 아이들의 경우 4시간 기준 1시간~1시간 반 정도 잠을 자는데... 그 시간 동안에도 집안일은 일체 못하게 되어있는 상황이었는데 그건 휴게시간에 해당이 안 되는 것인지. 참 애매할 노릇.

그러나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 돌봄 아이돌보미 분들께도 거절을 당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낯가림이 심하고 울어서 못하겠다 하시며 3일 만에 스스로 마지막 근무 날을 정하신 분도 있었다. SNS 맘카페에 짧은 하소연을 했더니 긴 댓글이 달렸다.

KakaoTalk_20211201_153707775.jpg



(대부분 등 하원 도우미 정도 원하시지, 8kg만 넘는 아가여도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책임감과 사명감, 애정을 가지고 양성교육을 통해 전문가다운 면모를 갖춘 아이돌보미 선생님도 물론 많을 것이었다. 하지만 초반에 만나본 돌봄 선생님들은 본인, 일하기 편하신 대로 구미에 맞는 아이들을 ‘픽’ 하시는 분들도 여럿이었다. 아이 돌봄 서비스. 이름만 들어도 든든했었는데 3일 만에 씁쓸하다 못해 슬퍼졌다. 아가들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해야 한다면서 시간 텀 지키지 않고 울면 먹이시는 분, 밤잠 개의치 않고 낮잠을 무한 재우려는 분,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동영상을 보여주시곤 핑계를 대시던 분을 겪고 나서 차라리 독박 육아가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년생이나 쌍둥이 육아를 하며 직장생활과 집안일까지 병행하는 슈퍼우먼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다들 시댁이나 친정에서 도움을 받는 것일까. 당신의 육아는 안녕하신가요.

(내 생애 첫 육아,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결국 육아는 아이템 빨. 아이템느님 찬스를 알아보기로 했다. 동네 장난감 도서관에서 장난감을 대여하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 전동 바운서 등을 대여했다. 한 아이를 짐볼에 태워 재우는 동안 다른 아이는 전동 바운서로 재우는 것이다. 한 아이에게 모유를 줄 동안 다른 아이에겐 ufo수유쿠션에 분유통을 끼워주었다. 한 명을 목욕시키는 동안, 다른 한 명은 바우서나 보행기, 위고 등 놀잇감 안에 넣었다. 하지만 100일도 채 안된 아이들에게도 전동 바운서 위보단 모자라도 사람 품이 좋은 모양이었다. 바운서 위에서 쉽게 잠들지 못하고 보채는 때가 빈번했다. 그럴 땐 한 아이는 안아서 다독이고, 다른 아이는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끼우고 공갈 젖꼭지를 물려 재웠다. 먹고 싸고 자고 하는 지극히 본능적인 행위들에 마저 우리 쌍둥이들은 결핍을 경험하는구나... 싶어, 자주 눈물이 났다. 마음은 하바나. 꿀렁꿀렁 리듬은 타고 있었는데 음악이 흐르는 와중에 내 몸은 짐볼 위, 들고 있는 건 아가 상전님들이었다. 정작 화장실까지 가는 길도 멀기만 하던 현실. 눕히자마자 발동되는 등 센서에 볼일이 임박한 상황에 다다르면 슬프다 못해 분노가 치밀었다. 깽알거림과 옹알거림, 응애를 넘어서 아가들과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KakaoTalk_20211111_001349583.jpg




그래도 잊지 않았다. 전동 바운서보다 사람의 온기가, 둘에게 모자랄 지라도 품 안이 더 좋다는 것. 형형색색 볼거리 많은 장난감보다 아이컨택이 더 좋다는 것, 기계음으로 흘러나오는 동요보다 음치일지라도 사람의 노랫소리가 더 좋다는 것. 백일의 기적이라는 단어만 붙잡으며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다 보니 언제 오나 싶었던 100일이 왔다. 육아 때문에 힘든 와중에도, 아이들로 위로받는 순간들도 꽤 채워졌다. '독박 육아와 퇴근 후 육아 출근' 서로의 고충 무게를 저울질하며 평행선을 걷던 남편과도 아이들로 인해 누그러뜨려졌다. '이번 텀 분유는 네가 줘라, 이번 잠은 네가 재워라.' 상대에게 미루기를 여러 번 하면서도 '보조개는 날 닮았네, 눈은 날 닮았네.' 서로의 얼굴에서 닮은 구석을 찾아내며 한껏 자란 아이들 모습에 므흣. 이내 행복해했다. 육아에 지쳐 툴툴거리다가도, 문득 난임의 기억이 떠오르면 이내 눈물이 그렁거렸다. 그리고 엄마임에, 감사했다. 감정들이 널을 뛰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출산 끝, 카드 할부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