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은 과연 천국이었나
내게 너무 발랄하고도 유쾌한 쌍둥이들. 그들은 늘 다른 콘셉트로 에너지 발산 중이었다. 한 뱃속, 서로 다른 공간에서 웅크려있던 그 순간부터 달랐다. 한쪽에선 내내 기척이 없어 궁금하게 하다가도 문득문득 소란스럽게 인기척을 하였다. 다른 한쪽에선 잔망스럽게, 자주 꿈틀거렸다. 수면 패턴은 각기 달라 한 아이가 잠 들고나면, 다른 아이가 깨어 깽알거렸다. 긴 새벽을 보내게 했다. 자는 것도, 깨어있는 것도 아닌 채로 빈번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찡얼찡얼거리는 한 아이와 쨍하게 울어대는 다른 아이 사이에서 혼이 나간 채로 멍하게 눈물을 흘리던 한낮. 안아서 재워라, 짐볼을 태워라 다른 주문으로 잠투정하는 아이들과 함께_ 다시 밤.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것처럼 5성급 산후조리원도 아니었건만, 그곳이 천국인 게 맞았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직감했다. 산후조리원에서 마음껏 즐겼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런데 산후조리원에서 막상 산모는 천국임을 실감할 수 있었을까?
(임신은 고달프고 출산은 잔인하고 회복의 과정은 구차하죠.)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 입소한 출산맘들에게 원장은 말한다. 산모들은, 수면양말을 장착하고 내복으로 중무장한다. 삼시세끼 미역국으로 온몸을 요오드화시킨다. 젖몸살을 방지하기위해 충분한 마사지로 전투태세를 갖춘다. 그리고 젖 양산에 나선다. 산후조리원에서 엄마들은 회복보다 모유 생산성 극대화를 위해, 힐링보다 모유 수유에 있어 빠른 대처 능력의 효율화를 기한다.
본래 산후조리는 임신 중 변화되었던 몸의 상태를 임신 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이다. 자궁문이 열리면서 골반의 형태가 변하고, 머리에서 발 끝까지 뼈 마디 하나하나가 풀어지니 몸이 회복될 만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출산으로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제자리로 돌리지 못하면 평생 출산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다고 하니 산후조리에도 많은 돈과 노력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 흔히 말하는 삼칠일까지, 즉 출산 후 3주간은 산모에게 중요한 시기였다. 의학적으로도 태반이 붙어있던 자리에서 오로가 분비됨으로써 자궁이 수축되고 회복되는 기간이었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쉼이 허락되지 않은 현실에 황망한 마음이 깃들면, 혼자 노래를 읊조린다.
(밥 젖 젖 간식 젖 젖 밥 젖 젖 간식 젖 젖 따르릉 수유하시겠어요?)
마음이 나태해진다 싶으면 '바나나 우유빛깔! 초유의 힘' 허벅지를 꼬집는다. 수유 콜의 노예가 되었다. 출산을 하고 나면 홀가분할 것만 같은 마음에 우울감이 찾아들었다. 솔곳이 한 잔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를 떠올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임신 전에 맥주도, 동동주도 한껏 마셔둘걸...임신 후에, 애 성질 버릴까 봐 차마 못 먹었던 그 매운 닭발도 먹어둘걸. 임신 전까지 시간은 거슬러가 온갖 먹고 싶은 것들을 동동 띄웠다. 하지만 여전히 몸은 이불속. 골반통과 산후 요통은 가시질 않았다. 그다음 수유 콜이 울리기 전에, 어서 자 둬야 해!
2주간의 산후조리원 생활 후 퇴소하고 찾았던 집은 안온하지 않았다. 다른 자매와 출산 시기가 겹쳐 한꺼번에 세 손주들을 안아 든 친정엄마에겐 산후조리를 도와줄 손이 부족했다. 나 역시 산후조리와 쌍둥이 육아를 차마 부탁할 수 없었다. 결국 집에 들어온 지 이틀 만에 다른 산후조리원으로 후퇴했다. 초보 부모와 쌍둥이와의 원나잇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집은 쑥대밭이 되었고 육아용품은 손에 닿는 대로 쓰고 던져놓았다. 응아 기저귀를 갈다가 똥 뿜 하는 아이 때문에 몸만 가까스로 피했다. 이불은 구하지 못해, 똥 묻은 이불 빨래만 한 무더기가 되었다.
난임으로 마음앓이하는 동안 나 못지않게 마음고생을 했던 사람은 친정엄마였다. 그녀는 이제 난감함과 미안함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난임 병원에 다니는 동안 배 주사를 놓는 딸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엄마였다. '마음 편하게, 생각해...' 말 한마디 잘못 건넸다가 뾰족한 말들만 받아 들고 아프다고 내색도 못하던 엄마였다. 시험관 시술 비용에 전전긍긍하는 딸에게 쌈짓돈을 슬그머니 내밀던 엄마였다. 그러던 엄마는 이제 난임의 강을 건너, 육아에 이르자 또 다른 봉투를 내밀고도 난처해했다. 갑자기 손주복이 터졌다며, 꼬물이 쌍둥이들과 다른 조카 사이, 큰 딸과 막내딸 사이에서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 그 뒤엔 태어난 지 6개월된 첫 조카가 옹알거리고 있었다.
출산 병원과 연계된 산후조리원에서 최대한 머물를 수 있는 시간은 2주간이었다. 갑작스럽게 조건에 맞는 산후조리원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2주간의 생활이 끝나고 나자, 어마어마한 금액의 카드값이 휘몰아쳤다. 기간 대비, 난임 병원에 쏟았던 병원비보다 산후조리원에서의 비용은 더 비쌌다. 출산 후, 가계부 기록을 뒤적거려봤다.
산후도우미 비용 120만원, 경혈마사지 70만원, 조리원 비용 (4주) 700만원, 병원 처치 65만원
2017년의 기록이라 지금과는 좀 차이가 있을테다. 그래서 최근 광주의 한 병원 산후조리원에 다시 문의해보았다. 최대 12박 13일 머무를 수 있으며 일반실, 특별실에 따라 220만원에서 50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2020년 상반기 전국에서 가장 비싼 산후조리원의 경우, 2주 기준 1,300만원에서 2,600만원의 이용료) 물론 쌍둥이의 경우, 단태아보다 1주당 몇 십만원의 비용이 추가되었다. 그나마 점차 출생육아수당 등을 통한 지원이 늘고 있어 다행이지만 본격 육아를 시작하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비용임엔 틀림없다. 현재 광주에서는 출생신고를 한 아동 대상으로 출생축하금과 육아수당이 지원된다. 출생축하금의 경우, 출생아별 100만원으로 쌍둥이일 경우 200만원 지원금이 나온다고 한다. (시간을 거슬러가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다.) 그리고 매월 20만원의 육아수당이 지급된다. 게다가 광주형 산후관리 공공서비스를 통해 출산일로부터 90일까지 건강관리사의 재가 방문 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다. 소득 수준별 차등 지원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 ‘라떼는 말이야...’ 산후도우미 업체에 여러 곳 연락을 한 끝에, 가격 비교 후 하루 몇 시간 집으로 방문해주시는 산후도우미 이모님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처럼 지원은 바라지도 않았고 그저 위생관념 철저하시고 내 아이를 사랑으로 케어해주실 수 있을만한 분을 찾는게 급선무였다. 쌍둥이라 산후도우미 선생님 구하는데도 사실 애먹었던지라, 이것저것 재고 따질 상황도 아니었지만. 이래저래 돈이 있어야 아이도 낳고, 키우는구나. 다시 씁쓸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주 재료가 미역으로 점철되었더라도 꼬박꼬박 삼시 세 끼가 나오고 세탁해 개켜주기까지 하는 빨래 서비스, 시간에 맞춰 청소에, 쌍둥이들 목욕 및 케어를 도맡아 해 주던 산후조리원 찬스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보니 괜한 비용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산후도우미의 역할은 지극히 한정되어있었다.
육아 앞에 손이 영글지 못한 초보 엄마와 아빠에게, 쌍둥이 육아의 길은 그렇게 열렸다. 수유를 얼마나, 어떻게 했는지, 똥오줌은 하루 몇 번, 어떤 상태로 쌌는지, 잠은 얼마나 잤는지, 아이들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이 관찰, 기록되었다. 엄마에겐 24/7 육아 트랩. 아빠에겐 퇴근 후, 다시 육아 출근. 새벽 수유 불침번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