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자연분만 출산

출산, 난임의 끝

by 김여희

Isn’t she lovely 그녀가 사랑스럽지 않나요

Isn’t she wonderful 그녀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어요

Isn’t she precious, less than one minute old

그녀는 너무 소중해요. 그녀는 이제 갓 태어났죠

I never thought through love we’d be making one as lovely as she.

우리의 사랑의 결실로 그녀처럼 사랑스러운 생명을 가지게 될 줄 상상도 못 했어요.


1976년 발표된 스티비 원더의 Isn’t she lovely 곡은 그의 딸 아이샤 모리스의 옹알이로 시작된다. 시각장애로 인해 평생 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스티비 원더는, 갓 태어난 딸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여러 공연들 중에서, 스티비 원더의 공연을 개인적으로 No.1으로 꼽는덴 그 안에서 진심을 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돌 그룹처럼 화려한 퍼포먼스가 있는 공연도 아니었는데도, 가사의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외국인 가수의 내한공연이었는데도, 노래에 담긴 간절함이나 진심은 오롯이 전해져 왔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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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고 나니, 이제야 간간히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랑의 결실로 아름다운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 그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여자라서, 결혼을 했으니, 응당 임신은 하는 것으로... 출산의 고통 끝에 아이는 무난하게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 후에, 당연하게 이어질 것처럼 생각했던 나와 남편 사이의 연결고리는 쉬이 맺어지지 않았다. 난임이라는 단어 앞에 막상 서고 보니, 임신과 출산의 과정 끝에 생기는 인연이, 얼마나 큰 무게감이었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내게, 아이가 생길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곧이어 아이를 무사히 낳을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과 노파심으로 이어졌다. 이렇게도 지난한 과정들의 연속이었던가. 유유자적 유모차를 끌고 다정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여느 부모들을 경외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무슨 복을 타고난 것인지, 부럽다는 표현만 입가에 맴돌았다.


39주가 되어도 뱃속의 아이들은 신호를 주지 않았다.


(자연분만으로 쌍둥이를 낳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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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7주에 시도하는 제왕절개의 시기를 넘어서 39주에 이르니, 곳곳에서 탓하는 소리가 들렸다. 쌍둥이 자연분만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졸지에 무모한 임산부가 되었다. 몸은 버거웠지만 나름 안정적이었는데... 하지만 생각 외로 편하게 걷던 나와는 달리 사람들은 모두 아슬아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러다 39주 1일에 접어들어서 병원을 찾았다. 유도분만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유도분만은 자연스럽게 진통이 시작되기 전에 자궁의 수축을 유도하여 질식분만(자연분만)을 시도하는 과정이었다. 임신을 유지하는 것보다 출산하는 것이 산모와 아기에게 득이 될 때 시도한다고 한다. 유도분만 전 날, 20시에 입원하여 자궁수축 검사와 내진을 한 후 질정을 투여했다. 24시부터 물을 포함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먹지 않았다. 아이들을 만나는 그 길의 끝자락에 드디어 다 닿았다고 생각하니 뭉클했다. 유도분만 당일 6시부터는 질정을 제거하고 내진 후 수액을 맞았다. 수축 검사에 들어갔다. 7시 촉진제를 맞고 진통을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진통, 진통, 진통...! 아무리 기다려도 내가 상상할 정도의 진통 외엔 느낌이 안 왔다. 여느 생리통 날에의 통증보다 오히려 더 미미할 정도의 아픔이었다. 하늘이 노래지는 고통은커녕, 배가 싸한 느낌 정도였다. 배가 슬슬 아프긴 하지만 진통제를 먹지 않고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생리통 느낌이랄까. 다른 침대 옆에선 시름시름 앓는 소리, 주기적으로 소리를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수축이 간헐적으로 지속되었다. 2cm 정도 열렸다 하여 분만대기실에서 가족분만실로 옮겨졌다. 부끄럽다는 제모와 관장의 굴욕도 반갑게 받아들였다. 14시엔 무통관을 삽입했다. 하지만 15시, 1차 유도분만 시도가 중지되었다. 진통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했다. 유도분만 시도에도 불구하고 6시부터 15시까지 적당히 참을 수 있을 정도의 고통만 경험케 한 것이었다. 너희 대체 언제 나올 셈이니. 갑자기 막막함이 밀려왔다. 애가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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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분만 시도, 두 번째 날을 맞이했다. 39주 2일째를 맞이하고 나니 가족들 사이에서도 제왕절개의 종용과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당사자는 오죽할까. 몸무게는 54kg에서 70kg를 훌쩍 넘었다. 두 아이를 뱃속에 담고 있으려니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누울 때에도 끙끙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유도분만 첫날처럼 촉진제를 투여해봤지만 속 시원한 진통은 걸리지 않았다. 난포 키우는 과배란 주사에도 저 반응 군이던 몸은 분만을 돕는 촉진제에마저 반응을 안 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양수를 터트리기로 했다. 확률은 반반이라고 한다. 양수가 터져 자연스럽게 진통이 걸리면 자연분만을 진행하는 것이었고 아니면 아쉽지만 제왕절개로 아이들을 만나는 거였다. 하지만 양수를 터트리고 나니 말로 형언하지 못할 고통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하늘이 노래졌다. 짐승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남편이 옆에 있었다면 머리채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드라마에서의 출산 장면이 실제 상황이 되는 순간이었다. 진부한 표현밖에 생각나지 않았지만 그냥, 무턱대고, 몹시도 아팠다. 등에 무통관을 꼽고 무통주사를 맞았는데도 이런 고통이 느껴질 수 있을까...? 남편 대신 옆에 있어주던 간호사 선생님에게 물었다.


(무통 주사를 맞은 거 맞나요?!!!!!!)


분명, 무통 주사를 맞고 난 후 거짓말처럼 진통이 안 느껴졌다고 했다. 이상할 일이었다. 대체 나는 왜 이렇게 아픈 거지? 주사 약빨은 언제 드는 걸까. 혼자 되뇌었다. 하지만 ‘이러다 제가 죽겠어요.’ 싶은 아픔만이 있을 뿐이었다.


(무통 주사가 안 듣나봐요....다시 놔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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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무통관을 타고 차가운 주사액이 흘러들어왔다. 등줄기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무통주사 2대째. 그러나 여전히 무통주사 찬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유도분만 이틀째에도 진통이 걸리지 않자 긴장 풀고 있던 남편은 뒤늦게 걸음을 재촉해서 오는 중이었다. 아픈 가운데도 외로움과 서러움, 탓하는 감정들이 일시에 밀려들었다. 잠시 고통이 잦아들자 평소 좋아하던 빅뱅의 노래를 크게 틀어, 고통을 잊어보마 했다. 2시간 즈음 목이 쉬도록 소리를 내지르고 나서야 남편이 도착했다. 고통을 덜어줄 남편도 아니었지만 그냥 서운했다. 눈물이 흘렀다. 욕도 새어 나왔다.


(이제 오면 어쩌자는 거야.)

출산에의 고통을 남편과 함께 이겨낸다는 마음으로, 남편을 기다렸던 건 아니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상상하지 못할 그런 고통. 말로만 ‘힘들었다’ 전하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거저 낳았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며. 안 보고 안 들으면 평생 상상도 못 할 거라며. 남편의 손을 부여잡았다. 온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온 몸으로 고통을 만끽했다. 양수가 터지고 3시간을 꼬박 아파, 아이들을 만났다. 3.08kg, 2.62kg의 서로 다른 성별의 두 아이와는 7분 간격으로 인사했다. 한 차례 아이를 내보내고 났는데도 아직 또 하나가 남았다니. 첫 번째 아이보다 머리가 더 큰 아들 차례였다. 초음파로도 여러 번 확인했는데도 “손가락, 발가락 있어요?!”라는 질문이 왜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몸에 긴장이 풀리었다. 진짜 엄마가 되었다. 이제야 완벽하게 졸업한 난임 병원이었다.

2015년 10월 16일, 난임 병원에서 첫 진료를 시작한 이래로 769일 만에 출산으로 난임이라는 단어를 완벽히 털어냈다. 남매 쌍둥이를 39주 품었다가 3.08kg, 2.62kg로 건강하게 만난 날. 내 인생에서, 나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날이었다. 기적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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