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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Dec 07. 2021

산후우울증에 걸린 세 여자

영화 툴리 Tully & 82년생 김지영

쌍둥이 엄마에게, 쨍하게 볕 드는 100일의 기적은 없었다. 24/7 육아로 빼곡히 짜인 일상 속에 먹먹해질 때마다 난임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간사한 마음의 나를 채찍질해보다가도 시시때때로 우울감이 깃드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산후우울증인가...? 아픈 건 마음뿐만이 아니었다. 탄력을 잃은 뱃살이 매만져졌다. 매번 직수+유축을 열심히 하고 마사지도 받았는데도 젖몸살에 며칠 잠을 못 이뤘다. 젖이 빠져나가지 못해 겨드랑이 쪽에 멍울이 만져지자 겁도 났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머리카락은 숭숭 빠졌다. 본격적으로 뛰지도 않았는데 팬티가 젖어들었다. 
 

(마음이 아니고 몸이 고장 났군요.)   

  

그러던 중, <82년생 김지영> 책을 받아 들었다. 하지만, 앞 쪽 책장만 몇 장 뒤적거리다가 덮어버렸다. 현실이 이럴진대, 답답한 현실을 책을 통해 또 확인해서 무얼 하나_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공감 가는 내용이었지만 굳이 탈출구로 삼는 책에서조차 곱씹고 싶지 않았던 것. 여전한 현실이라 불편했고 크게 달라짐이 없을 거라 암울했던 까닭이다. 그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난임으로, 육아로, 그 어느 때라도 인생의 굴곡 위에서 지친 나를 빈번히 위로해주던 건 집콕 영화관이었었는데...! 그러다 책으로 포기했던 '82년생 김지영'을 영화로 다시 열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오징어를 굽고 차가운 캔맥주를 꺼내어 들었다. 간장이 든 종지에, 마요네즈를 짜고 청양고추도 쫑쫑 썰어 넣고. 뭐라도 질겅질겅 씹어야 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답답함이 목까지 차오르던 영화. 그러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네들 엄마의 모습을,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담은 이 영화가 ‘대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알아주고는 있구나, 공감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다 어느 댓글을 읽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62년생도 아니고 72년생도 아닌 82년생 김지영이 그렇다고요!?)    


우리네 세대의 여성들에게 큰 핀잔의 함축을 담고 있던 한 문장이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돌봄시터 비용을 감안하면서까지 남편 월급보다 못 버는 돈을 굳이 나가서 벌어야 하나, 고민을 하는 전업주부 김지영도 있다.  ‘살림도 결제되나요?’ 살림을 꾀차고 도맡아 하는 집 안의 사람, ‘집사람’의 노동의 가치는 얼마인지. 그녀는 도돌이표 살림 속에서 허덕이는 와중에 ‘집에서 노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종일반 제도가 있다한들, 18시-18:30 시각까지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기지 못하는 직장맘 김지영도 있다. 퇴근 후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반찬가게에서 산 반찬에, 밀키트 포장을 뜯으면서 미안함을 느끼는 여자. 그러다 김장철을 맞이하고 제사상을 차린다. 육아휴직을 힐끗거려보지만 다시 돌아오면 내 자리가 있을까, 자신이 없다.  이토록 82년생 김지영의 일상들은 여기저기 녹록지 않거늘. 왜 폄하하지 못해 안달인 걸까.


(그럼, 네가 나가서 돈 벌어라. 누군 밖에서 돈 쉽게 버는 줄 아나. 돈, 돈, 돈.)

(일도, 육아도, 둘 다 제대로 못할 것 같으면 때려치워.)     


돈의 문제가 아니라지만 난임의 순간에서부터, 임신,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지겹도록 주변을 맴도는 게 돈이긴 하다. 그리고 속 타는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들 마음 심보가 그렇다. 사람들 마음속엔 아직도 집에서 애 하나 보는 게 뭐가 힘들다고 그렇게 유난이냐, 는 지극히 단순한 발상이 담겨있다. 경력단절의 두려움, 산후 우울감 등은 배제한 채 말이다. 직장에서 그리고 집에서 감당해야 하는 어깨의 짐들을 간과한다. 아이가 잘못되면 엄마의 부재 탓, 집이 엉망이면 집구석이 이 모양이라는 핀잔, 아이가 심한 떼라도 쓰거나 과하게 울면 애정결핍이냐는 질문, 바람이라도 쐴까 싶어 나섰던 외출 자리에도 ‘맘충’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요즘 엄마들은 어디까지 강인할 수 있을까.    



영화 82년생 김지영



출산 후 바로 밭을 맸다는 52년생만큼은 아니더라도, 자기 아이뿐만 아니라 시댁의 삼촌, 고모 결혼 행사까지 일을 도맡아 하던 62년생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집 마련 과제를 안고 육아와 직장생활과 가사를 병행해야 하는 82년생도 충분히 힘들다. 출산 후 육아 시작, 산후우울증이 깃들어있는 사람에겐 더더욱 그렇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보여주던 김지영의 삶의 단편을 옳다, 그르다_판단하기보다 그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존중, 이해,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에서 누구든 녹록지 않다. 육아휴직이라는 제도 앞에서도 건재하지 못할 자신의 자리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가장의 고충도 알고 있다. 퇴근 후, 바로 육아 출근해야 하는, 그러면서 와이프 컨디션 살피기에도 바쁜_애로사항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공감해주고 배려해주는  마음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때로 우리에게 맹목적인 응원이 필요하니까. '나는 당신을 도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내 편이 주는 든든함도.



영화 툴리




산후우울증으로 이유 있는 소리를 내지르던 여자는 <영화 툴리>에서도 나온다. 그녀에겐 신발 하나 제대로 못 신으면서 예민한 시기를 맞이한 딸아이가 있다. 또 장애까지는 아니지만 '유별난'이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특수 돌봄이 필요한 남자아이도 있다. 원치 않았던 셋째 아이를 낳게 된 그녀는 유축기를 달고 넋 놓고 앉아있기 일쑤다. 열심히 수축한 모유를 식탁 위에 쏟기도 한다. 밤샘 육아에 지쳐 반쯤 감긴 눈으로 하루를 보낸다. 냉동식품들로 식탁을 채우면서 멋쩍어하고 운전 중에 부산스럽게 구는 얄궂은 아이에게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마를로의 사정과 무관하게 침대에서 게임에 매진할 수 있는 무심한 남편은 참으로 한결같다. 그런 마를로에게 '아이만이 아니다. 당신을 돌보러 왔다"라고 말하는 야간 보모 툴리가 나타난다.   

  

(여자들은 치유되지 않아요.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컨실러 범벅이죠.)     


꿈만 같았던 20대를 지나 임신을 할 때마다 몸은 2배로 늘어나고 30대가 새벽 쓰레기 차처럼 찾아왔다는 마를로에게 툴리는 말한다.     


(매일 일어나서 가족들에게 똑같은 일을 해주는 것, 삶도 심심하고 가족도 심심하고 집도 심심하지만 그게 멋진 거예요. 그게 대단한 거예요.)     


그렇게 싫어하는 그 단조로움이, 실은 가족에게 선물과 같은 거라고 말한다. 산후우울증을 겪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이렇듯 실은 별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별거 아니지만 별거인 그런 말, 그런 공감, 그런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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