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업주부다. 전국으로 난임 병원을 들쑤시고 다녔던 난임의 기간과 하루하루 살얼음 내딛듯
걸었던 임신의 기간을 거쳐서... 출산 후 몸으로 한 아이를 안고, 두 발로 한 아이를 지탱해 가까스로 버티던 100일의 기적을 바라던 시기를 넘어...
7살 쌍둥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는 온전히 자유시간을 누린다는 (남편 피셜), 나는_ 전업 주부이자, 육아맘이다.
다만 30분의 혼자만의 자유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주말의 끝에, 온 신경이 날로 서있는 엄마에게
평일의 시간들은 귀하디 귀하다.
남편의 말처럼, 다만 몇 시간만이라도 집에 혼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해야 할까.
전업주부의 자유시간 사용법 옵션 1. 운동 (이동시간 포함 2시간-2시간반 소요) + 3개월 현금가 48만원 크로스핏 or 1개월 P.T. 44만원 or 필라테스 1년 99만원
집에 혼자 있어도, 아이들을 보내고 난 뒤 끝엔 바로 설거지하지 않아 밥그릇 가장자리로 마른 밥풀이 눌어붙은 그릇들이 눈에 치인다.
주방에 들어서서 하는 일이라곤, 에스프레소 자동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거나 두어 달에 한 번
짜파게티나 라면을 끓이는 이벤트를 하시는 게 전부인
남편은 때때로 중얼거린다.
"바로바로 설거지하면 그릇에 눌어붙는 일이 없을 텐데."
자동차에는 최신 기능이 탑재되길 바라면서도
종종 무릎에서 나는 따닥따닥 소리와 함께 온 집안 바닥을 맨 걸레로 훑는 집사람에게, 자동물걸레청소기 사라는 말 한마디 한 적이 없는 남편의 핀잔이다.
누가 모르나. 하지만 들어오는 그릇들은 제법 많은데
설거지하는 출구는 하나인 집. 아이들 옷을 한 벌 입히는 데, 질문 5개가 쏟아져 '차라리 내가 하고 말겠다' 생각이 찾아드는 집. 요구사항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귀에 "엄마 엄마 엄마"가 환청처럼 들리는 집에서 어떤 집안일이든 버튼 누르듯 금세 해결될 리 없다.
시스템의 문제인가 싶어, 아이들에게 각자의 정리를 종용해보기도 하고 남편이 티셔츠, 바지, 양말을 입히는 현장에서 물건을 못 찾아, 부르는 일이 없도록 라벨링도
해두었지만. 자동화 시스템은 여태껏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상할 일이다.
어찌 됐건 넘쳐나는 집안일을 마주하고서 모른 척하기 힘든 집구석에서 다만 몇 시간이라도 나가있어야
그것이 진정한 자유일 진데.
나가있는 동안 커피 한잔을 마시고 밥 한 끼로라도 기분낼 때면 2만 원이 뚝딱인 고물가 시대에
아무런 경제적 지불 없이, 몇 시간이고 받아주는 곳은 산책길과 도서관뿐이다.
브런치일상
그래서 점심은 볶은 김치 하나 두고 넷플릭스를 친구 삼아 대충 때우는 일이 빈번하다. 하지만 어쩌다 브런치로 기분 내는 날엔, sns기록을 잊는 법이 없으므로 내 sns엔 '아이들 보내고 유유자적 브런치 먹는 맘 님'으로 살뜰히 기록된다.
돈 나올 구멍은 제한적이고, 온통 돈 나갈 일만 넘쳐나는 단출한 살림에, 오래간만에 평일 저녁 2시간짜리
파트타임 잡이 들어왔다.
직장인들을 감안하여, 18시 반부터 20시 반까지 이루어지는 단발성 북토크와 꽃수업.
꽃수업
내 이름 석자로 책을 냈다는 것만으로 큰 의미를 두며,
일 년에 몇 번 '작가'라고 불릴 일이 없는 내게_
몇 안 되는 일감이라, 어느 시간대라도
마다하는 일이 없다.
2시간 수업에 12만 원 + 꽃 등 재료비 따로.
고물가 시대에 재료비로 뭔가 수익을 창출해 보겠다는 건 요원한 일인 데다, 품목 하나하나마다 사진과 영수증을 원본, 복사본으로 나누어
붙여 제출해 욕봤던 적이 있는 관공서를
대상으로 하는 일이라
다른 꼼수는 애초부터 생각지도 않는다.
그저 즐거운 마음, 감사함으로 일하는 파트타임 일 이벤트였는데...
꽃시장으로 이동해서 거의 20단의 꽃들을 구매해 와 큰 통에 물을 담아 꽃들을 넣고 꽃들의 잔가지와 잎들을 정리하고 가시들을 제거하는 밑작업에만 꼬박 3시간이
걸렸다.
영어 수업
그 3시간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있는 동안
해결했지만 나머지 시간은 아무리 남편과 협업으로 대응해 봐도 해결이 안 됐다. 결국 '아이 돌봄'으로
두 아이 2시간 30분을 맡기는데
5만 원 남짓의 돈을 쓰고
별도로 간식비 + 밥값을 지출하였다. 김밥 네 줄에 2만 원이 들었으니 7만 원 즈음인 것으로 갈음한다.
이동시간 포함 수업 전 밑작업 3시간 + 수업 2시간 + 정리 1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집 근처에 오고 나니
벌써 21시 30분. 저녁도 못 먹었던 터라 집 근처 버거킹에 앉아 세트메뉴를 11,000원에 결제했더니 마감시간이 10시라는 말과 함께 음식들을 내어줬다.
맛있게 먹으라는 건지, 알아서 빨리 먹고 나가라는 건지.
21시 40분에 받아 든 감자튀김은 미리 튀겨놓았던 건지 겉은 말랐고 안은 포근포근하지 않았다.
꽃을 이고 지고 밑작업에 필요한 비품들을 총 5번에 걸쳐서 올리고 나르고서.... 밑잡업에, 수업까지...
온몸이 뻐근했던 가운데
긴장감이 풀려 피곤함이 몰려들었다.
그 와중에 콜라의 청량감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던지.
돌봄 선생님을 썼던 2시간 반 동안 지출된 비용에,
햄버거 세트 비용까지 덧셈을 하고 있던 너저분한 계산들이 파도 걷히듯 걷히는 순간이었다.
돈이나 여타 다른 수고로움을 계산하지 않고
온전히 감사해야 할 오랜만의 일 이벤트 끝에,
평소 내 하루, 전업주부의 노동은 얼마로 셈해져야 하는가
의미 없는 물음만 남기고 끝이 났다.
여러 셈법들 속에, 잔머리를 굴리던 머릿속 한편에서 꾸짖는 울림도 들려왔다.
그저 감사할 일이거늘!!!
초등학교 들어가면 아이들이 13시면
집에 온다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