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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 날씨는 어때

가끔 우리 집 육아일상은 성향이 다른 남편과 아내 사이에 벌어지는 눈치게임처럼 아슬아슬하게 흘러갔다. 부부의 닮은 구석보다, 엄마와 아빠의 다른 성향이 더 두드러지던 육아일상에서  엄마와 아빠가 한 발 한 발 내딛는 유리바닥은 어떤 날엔 견고했지만 어떤 날엔 한없이 얇았다.


매끼 먹는 것에 진심인, 부부의 잘 차려진 밥상 앞에 ‘저녁식사’라는 바닥은 잘 딛고 넘어갔다. 하지만  쌍둥이의 밥상 앞 장난이 멈출 줄을 모르고 결 옷에, 식탁에 음식 파편 공격이 날아드는 순간, 남편이 내디뎠던 유리바닥은 자주 와장창 깨졌다.





아이들인데... 그럴 수도 있지 않냐, 눈치를 보며 서둘러

음식파편을 훔친 건 나(엄마)였다. 그러나 여지없이, 이따금 남편의 분노 버튼은 눌러졌고 고성이 이어졌다.

화는 아이들의 식사예절에 대한 훈계로 시작되었다가 밥상머리 교육을 거쳐, 살림에 대한 지적에까지 불똥을 튀었고 집에서 하는 일이 뭐냐는 핀잔에까지 꽂히기도 했다. 남편보다 매사, 다소 허용적인 나는 고압적인 상황이 싫으면서도 갑작스럽게 터지는 분노 폭탄이 싫어 참는 때가 많았다. 육아일상도 버거울 때가 많았지만 아이들 실수에, 살림이며 육아방식에까지 평가를 들어야 하는 게 억울했다. 하지만 억울함에, 가시 돋친 말을 내비쳤던 날엔 고성을 넘어서 난폭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아이들 앞에서 적어도 폭탄이 떨어져 집이 폐허가 되는 꼴은 보이지 말아야지 싶어, 늘 더 조심하고 참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미리 눈치껏 돌발 상황에 대비했고,

먼저 선수 쳐 아이들을 혼내기도 했다.


하지만 멋모르던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긴장감은 온전히 전달되는 모양이었다. 특히 딸이 작고도 큰 눈동자를 굴리면서 눈치를 보는 횟수가 늘었다.


언젠가부터 딸은 나에게 날씨를 묻기 시작했다.

“엄마 오늘의 날씨가 어때?” 영어에, 욕심 많은 엄마에게 이 질문은, It's cloudy.라는 대답으로 답변 지어졌다. 딸은 다시금 물었다. “엄마 오늘 날씨는 Sunny잖아 Sunny!” 이상한 일이었다. 언뜻 창 밖을 봐도 잔뜩 구름을 머금어 우중충한 날씨였는데 sunny라니. 다음날 딸은 또다시 질문했다. “엄마 오늘 날씨는 어때?” 어제의 구름 뒤로 보슬보슬 봄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It’s rainy.” 대답했더니 이번에도 또다시 “아니야 오늘 날씨는 sunny잖아!”






그제야 답답하다는 듯 재차 오늘의 날씨를 알려주던 딸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름 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아이는 왜 그랬을까. 그 후로도 하루 한번 아이는 날씨를 질문했다. 몇 날을 걸쳐 한참 날씨 질문이 이어진 끝에, 딸이 엄마의 기분을 묻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딸은 매일매일 나의 기분을 체크하고 있는 거였다.


엄마의 변화무쌍한 컨디션을 늘 감지하려는 아이의 눈망울 레이더망 앞에, 온전히 나의 기분 날씨를 드러낸다는 것이, 이기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남편의 분노버튼이 눌러지지 않도록 그가 바라는 정갈한 살림 모양새를 위해 노력했다.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눈치껏 고군분투하던 육아일상 속의 나는 때때로 우울하고 때때로 속이 문드러져갔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대답했다. “엄마의 오늘 날씨는 rainy야. 하지만 엄마는 비 오는 날도 아주 좋아해. 비 오는 날에, 우산을 들고 비를 맞으러 나갈 수도 있잖아. 그리고 엄마는 비 오는 날 창이 큰 카페에 앉아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걸 보는 것도 아주 좋아해. 우산 위로 또닥또닥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드는 것도 아주 좋아."


평소와는 다르게 긴 대답이, 한글로 이어져서 그랬는지, 7세의 감성으로도 썩 공감이 가는 대화여서 그랬는지, 아이는 갑자기 신난 채로 대답했다. "엄마 나는 물웅덩이에서, 장화 신고 첨벙첨벙하는 게 좋아!"






아이는 마른땅에서 물을 튀기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동화책 ‘이렇게 멋진 날’에서 우산을 들고 첨벙첨벙 뛰고 룰루랄라 큰 소리로 노래하는 아이들처럼 한껏 즐거운 모습이었다.


아이들에게 매번 맑은 날 속의 엄마일 수는 없어도 비가 오든, 천둥 번개가 치든,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아.’ 담담하면서도 굳건하게 속삭여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진 않을까. 요즘은, 아이가 엄마의 날씨를 묻기 전에 먼저 아이의 날씨는 묻는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에게 왜 자꾸 엄마의 기분을 묻는 거냐고, 질문했다. 딸은 엄마가, 슬프거나 화가 났을까 봐.라고 대답했다.







생각해 봤다. 노력을 한다고 해도 가끔 기가 막히도록 억울한 에피소드가 문득 찾아들기도 하는 쌍둥이 육아, 결혼 일상 속에서 나는 슬퍼하지 않고 화내지 않을 수 있을까? 적어도 아이 앞에서만큼은! 이겠지만 아이 앞에서 눈물을 떨구거나 화를 참으며 몸을 바르르 떨거나 하는 것 역시 조심해야 할 일이었다.


탁 트인 카페에서 누군가 말했다.

"몇 살이에요?"

"7살인데 애먼 7살이에요.'

"7살이면 다 키웠네!"

"네..."


보기 좋게 빵과 커피를 세팅하기도 전에, 초콜릿 파우더가 한껏 묻은 빵으로 작은 손들이 가고

서로 먼저 먹겠다며 싸움이 일었다가 온 입으로 초코

파우더를 묻히다 못해, 옷에까지 자국을 남기고 야마는

7세들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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