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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중 Aug 09. 2020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2권'

표도르 카라마조프의 죽음, 친부 살해에 관하여

1. 많은 작품들 속 '친부 살해' 모티프


 도스토옙스키 최후의 걸작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2권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표도르 카라마조프가 살해당하는 일이다. 2권에서는 표도르의 첫째 아들 드미트리 카라마조프가 그의 아버지를 살해한 것처럼 보여준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유서 깊은 친부 살해 모티프를 도스토옙스키도 빌려 쓴 것이다.


 친부 살해 모티프를 다루는 작품들을 따라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이 나타난다. 오이디푸스는 여행 중에 길을 막는 한 노인을 때려 죽이고, 왕이 실종된 왕국에 도달하여 왕이 된다. 하지만 나중에 자신이 죽인 노인이 아버지임을 안 후에는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채로 떠돌아다니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의 제우스 탄생 설화가 있다. 제우스의 아버지 우라노스는 낳은 자식들이 자신을 죽일거라 두려워하며 태어난 자식들을 모조리 삼켜버린다. 그 중에서 꾀를 써서 살아남은 제우스는 끝내 우라노스를 쫓아내고 신의 왕 자리에 오른다. 


 이러한 친부 살해 모티프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그의 권력을 빼앗는다’ 라고 보여진다. 이것은 인간만의 행동인가? 라는 호기심에 동물들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한 번 찾아봤다.



2. 포유류의 ‘영아 살해’


 인간처럼 집단 생활을 하는 많은 포유류들은 하나의 강한 수컷 – 알파 수컷 – 이 이끄는 무리로 이뤄진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무리 내에서는 언제나 현존하는 알파 수컷과, 알파 수컷이 되기 위한 다른 수컷들의 경쟁이 벌어진다. 힘의 균형이 깨져 새로운 알파 수컷이 등장하는 ‘친부 살해’가 발생하면, 새로운 알파 수컷은 기존 알파 수컷의 유전자를 가진 새끼들을 죽이는 ‘영아 살해’를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들이 권력과 생존을 위해 우두머리가 되려 애쓰는 일은,  아들이 아버지의 권력과 부를 물려받아 가정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한 행동과 유사해 보였다. 그렇지만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결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친부 살해’를 터부시한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 세계에서는 도덕적인 이유 때문에 친부 살해는 옳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도덕적 계율이 분명해지기 전의 인간 세계에는, 친부 살해를 서슴지 않는 인간들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자식이 아버지를 죽여 권력을 이어 받는 현상은, 다음 세대가 이전 세대의 권력을 위협하는 사회적 현상으로 이어졌고, 이를 막기 위해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일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하나의 기준을 만든게 아닐까?


 혹은 친부 살해를 행했던 인간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은 인간들만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던 간에 현대 인간은 많은 포유류들이 행하는 친부 살해를 도덕적인 이유로 행하지 않는 동물이다.



3. 드미트리의 죄는?


 드미트리가 아버지인 표도르를 죽이고 싶어하는 이유는 동물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하나는 아버지의 돈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와 자신이 같은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미트리는 비록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하며 다녔을지라도 실제로 자신은 죽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그의 행동과 주위 사람들의 증언, 그리고 3000루블이라는 구체적인 증거는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드미트리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정황 증거를 만들어낸다. 도스토옙스키는 여기서 ‘한 인간의 죄를 타인이 판단할 수 있는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물론 도스토옙스키는 지극히 종교적인 사람이었기에 인간의 죄를 판단할 수 있는 건 신 뿐이라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현실 세계에서 법은 나름대로 공정한 기준으로 형벌을 담당한다고 생각한다면, 법의 관점에서 드미트리의 죄는 평소 행동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속 드미트리는 순수하게 동물적이고 감정적인 인물이다. 이는 동생 이반이 철저하게 이성적인 인물인 것과 대조적이다. 만약 드미트리가 조금이라도 이성적인 면모를 갖고 있었다면, 그렇게 공공연히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말하고 다니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도스토옙스키는 이성과 감정 중에 어떤 것을 더 낫게 보는가? 두 형제의 결말을 비교해 본다면, 철저히 감정적이었던 드미트리는 끝내 살아가지만 이성적이었던 이반은 끝내 미쳐서 죽고 만다. 인간은 이성을 배울 수 있지만 감정, 사랑을 배울 수는 없기 때문일까? 그러기에 진정으로 사랑할 줄 모르는 이반은 끝내 죽을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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