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차 마케터의 퇴사 회고록
"직장인은 존버 하면서 월급만 받으면 돼."
"그냥 돈 벌려고 일 하는 거지. 왜 자꾸 가치를 찾아?"
맞는 말이다. 진작에 이 말을 이해했다면 1년 동안 3번의 퇴사를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이런 글을 쓸 생각도 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좀 더 나은 1년이 되었을까?
나는 지난 2018년, 1년 동안 3번의 퇴사를 했다. 아마 인사담당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력서일 것이다. 특히, 한국에선 '잦은 퇴사 = 의지박약'이라고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난 근래 3번 모두 누구보다 의지 가득한 퇴사를 했다. 단, 아쉬운 점은 퇴사할 때만 해도 넘쳤던 자신감이 '소속'에서 벗어나는 순간 점차 낮아져서 불안해진다는 것. 그래서 다음 선택을 할 때 불안감 해소를 바탕으로 한 즉흥적인 선택이 이루어진다는 것. 지금까지 감에 의존하며 선택하는 대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나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패 위험 부담을 줄이는 선택을 하고자 퇴사에 대한 회고록을 끄적여볼까 한다.
첫 번째 퇴사
(2016.1~2018.2)
현재 나답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내 소중한 첫 회사. 2년간 마케터로 근무하며 어디에도 없을 좋은 사람들과 정말 재밌게 일을 했다. 근데 이렇게 좋은 회사를 왜 퇴사했냐고? 가장 큰 문제는 회사 자금이었다. 빠르게 변화는 콘텐츠 업계에서 이 스탠스로는 회사가 전보다 더 이상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 분위기에 따른 무력감이 누구보다 크게 나를 찔렀다. 이런 무력한 분위기 속에서도 TF팀을 꾸려 이런저런 재밌는 기획도 저질러봤지만 순간의 짜릿함 일 뿐 장기적으로 나아지지 않았다.
자, 남 탓할 수 있는 환경도 되었겠다. 새롭고 재밌는 일 뭐 없을까?라고 생각하던 중 어찌나 주변에서 창업을 시작하고 장사를 하는지. 나로선 눈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나름 마케팅을 한다는 사람으로서 그 까짓꺼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회사는 다니면서 남는 시간에 조금씩 준비해보려고 했으나, 그 당시엔 회사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도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에 나가서 발 벗고 뛰어다니면 뭐 하나라도 얻을 것 같은 생각에 하루하루 두근거렸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시점에서 회사 구조조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위기가 기회다' 싶었던 나는 다른 팀원들 대신 나서서 자진퇴사를 하였다.
다행히(?) 그 시점에 같이 퇴사한 동기들이 많다 보니, 회사를 나온 후 외롭다거나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오히려 직장인이었던 시절보다 더 바쁘게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3개월은 밤낮없이 내내 쇼핑몰 준비에 열을 올렸다. 근데 정말 딱 그 자신감은 3개월이었다. 열심히 준비하고 오픈하자마자 돈이 술술 벌릴 줄 알았던 그 당시 순진하게 당찼던 나는 생각처럼 돈이 벌리지 않자 급격히 불안해졌다.
안 되겠다. 다른 일과 병행해야겠다.
두 번째 퇴사
(2018.6~2018.8)
다행히 이 시점에서 건너 건너 스타트업 '마케터' 오퍼를 받게 되었다. 총 10명으로 꾸려진 스타트업이며 오픈과 동시에 커머스 상품 판매를 하면 된다는 업무였다. 다행히 대표님께서는 현재 나의 사정을 잘 이해해주셨으며 쇼핑몰을 병행할 수 있다는 조건하에 같이 업무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와서 보니, 내 일을 병행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구성이 갖춰진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하나씩 만들어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깨달은 것. 사람 좋은 게 다는 아니다. 일은 일이다. 그 당시 서로 껄끄럽더라도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물어보고 조정해야 한다는 것. 그래도 이왕 들어왔으니 닥치고 3개월은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임했으나 하루가 다르게 뒤틀리는 진행 안, 대표님 머릿속의 '그것'과 구성원들 머릿속의 '그것'의 불일치함, 큰 방향이 그려지지 않는 브랜드의 정체성 등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연이어졌다.
결국 삐걱거리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고, 나 포함 구성원들은 아쉬움을 담아 각자 자신의 길로 다시 돌아갔다. 약 3개월 간 대표님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창업 정말 생각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월급을 주는 세상의 모든 대표님을 존경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세 번째 퇴사
(2018.11~2019.01)
다음 회사까지 공백 기간 동안 열심히 내 장사를 했다. 가장 힘든 게 뭐였냐고 물어본다면, 회사에서 몇 천만 원씩 광고비를 쓰다가 내 상품에 몇 십만 원 쓰는 돈을 불안해하는 나 자신을 자각할 때였다. (쇼핑몰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챕터를 구성해서 써 볼 생각이다.)
결과적으로는 매 달 받던 월급보다 돈을 벌지 못하니 마음먹고 다시 회사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회사에서 다양한 면접을 봤다. 이 당시 회사를 고르는 기준이 크게는 3가지가 있었는데 1) 어떤 사람들과 일을 하는가 2) 수익구조는 탄탄한가 3) 어떻게 일을 하는가 로 따져 봤을 때 나름 세 가지 모두 적합하다고 생각한 한 회사를 선택했다.
OMG. 막상 입사해서 업무를 해보니 지난날의 판단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여느 기업이라는 곳들과 다르지 않았고 확실한 수직구조 시스템이 자리를 잡은 곳이었다. 난 수직구조를 싫어하지 않는다. 업무는 수직적으로 진행하는 게 효율적이며 개인에게 책임감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업무를 벗어난 수직구조는 싫어한다. 그렇게 되면 완벽한 상하관계가 되기 때문에 분명 더 발휘할 수 있는 부분들이 '위아래 지키는' 명분 하에 드러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냥 1-2년 시스템에 물들고 익숙해지면 편하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약 3개월간 업무를 하며 오픈하는 서비스에 최선을 다해 좋은 성과를 냈다. 나름의 도덕적인 업무를 마치고 정중하게 퇴사 의사를 밝혔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찾아서 주체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명분 하에 또 세 번째 퇴사를 하게 되었다.
의도치 않게 우여곡절 1년을 겪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지점이든 남 탓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1년 동안 3번의 퇴사를 하며 '현실 자기(actual self)'와 '이상적 자기(ideal self)'간의 간극을 몸소 크게 느꼈으며 그에 따른 성장통을 겪었다. 덕분에 정신적으로 굉장히 성숙해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올해는 내 가치를 드러내며 안정적으로 일 할 수 있는 곳에 정착해서 최선을 다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순간 감정들을 많이 기록해보려고 한다. 2019년 회고록에서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어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