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화. 괜찮은 건 없어

또다시 찾아온 이별 앞에서

by 요요

일용이를 떠나보내고 아이의 작은 편지 한 장에 기대어

조금씩 살아가려 애쓰던 나에게 또 다른 이별이 찾아왔다.


사촌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은

새벽녘, 잠들지 못하던 나에게 도착했다.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동생이 결국,

스스로 생을 놓았다는 소식이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무너졌다.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그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지를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해져 숨이 막혔다.


그리고 정확하게 한 달 뒤..

함께 살아오던 또 한 마리의 고양이마저

조용히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 아이는 나와 함께 한 시간이 14년이 흘렀지만

일용이가 떠난 후에도 나를 위로해 주던 아이였는데..

밥도 잘 먹지 못하고, 점점 말라가던 모습이 마음에 걸렸지만 조금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도 나를 떠났다.


나는 ‘회복’이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으로 의심했다.


회복한 줄 알았는데,

겨우 살아내고 있었는데,

왜 또 이렇게 무너져야 하는 걸까.


아이도, 나도, 함께 앉아 한참을 울었다.

딸아이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엄마, 너무 많이 떠나가서 슬퍼.”


나도 아이에게 작게 대답했다.


“그러게, 너무 많이 떠나가 버렸네.”


이별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떠난 존재의 빈자리를 메우기도 전에

또 다른 빈자리가 생겼다.


나는 여전히 괜찮지 않았고,

살아가는 일이 여전히 두려웠다.


그럼에도, 살아야 했다.

아이와 함께, 아직도 남겨진 고양이들과 함께,

오늘을 또 살아야 했다.


결국, 아이도 무너졌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던 아이는

조용히 구석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마, 나도 요즘 힘들어.”

아이의 한마디가 내 마음을 후벼 팠다.


그 한마디에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았고

일용이가 떠났던 그때처럼 다시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침의 공기,

창가에 스며드는 빛,

아이의 웃음,

떠난 아이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떠오른 기억들.


나는 기록 속에서

조금씩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찾았다.


‘오늘 하루, 나는 살아냈다’는 기록이

내일의 나를 살게 했다.


완전히 괜찮아진 것은 아니지만,

괜찮아지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오늘도 숨을 쉬고, 쓰고, 살아간다.


“우리는 오늘도 그리움과 함께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