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은 심장소리와 닮아서

by 별이언니

그런 날이 있지 않나요. 유난히 심장소리가 크게 들리는 날이.

손을 올려놓으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뼈와 살갗을 뚫고 전해져 갑자기 온몸이 떨리는.

세계의 소리 사이로 내 심장소리가 끼어들어 내가 커다랗게 울리는 종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 날.

오늘이 그래요. 아침에 비를 맞아서 그럴까요.

비를 맞으며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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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회사로 걸어오는데 빗방울이 가늘게 떨어지더군요. 비를 맞는 것을 좋아해서 가방 속 우산을 꺼내지 않았어요. 아무도 모르게 빗방울은 몸을 불리고, 정수리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무게가 제법 커다랗게 느껴질 즈음 - 갑자기 고동치듯 심장이 울리기 시작했어요. 두근 -

원없이 비를 맞고 걸었던 적은 재작년 여름 대만에 갔을 때 같아요. 비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궂은 날이었어요. 모두가 투덜거리며 싸구려 비옷을 사입었죠. 가이드 분이 내게 비옷을 건네는데 사양하고 싶었어요. 비옷은 덥고 답답하잖아요. 하지만 모두가 비옷을 입고 있으니, 그리고 난 또 버스를 타야 하니까, 하며 착한 아이처럼 나에게 속말을 건네며 비옷을 입었죠. 처마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모두와 함께 닭날개 볶음밥을 먹고 버스로 걸어가다가 살짝 비옷을 젖히니 커다랗고 맑은 빗방울이 꼭 눈동자 속으로 들어올 것처럼 떨어지는 거에요.

빗방울의 내면을 본 적 있나요. 그건 심장의 고동소리와 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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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적당히 내리는 비를 맞고 살짝 젖어서 약속장소에 들어서자 기다리던 사람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죠.

- 우산이 없었어?

- 아뇨, 우산 있었는데, 가는 비라서 그냥 맞고 왔어요. 상쾌하니까.

그러자 그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죠. .. 미쳤어.

그와 헤어질 때 그는 내게 말했어요. 넌 시를 쓰는 여자라 내가 이해할 수가 없어. 도대체 왜 비를 맞는게 좋은 거야? 모두가 우산을 쓰면 너도 그냥 써. 모두가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거리면 너도 걷지 말고 그냥 차를 타. 여자 혼자 배낭을 메고 여행을 가지 마. 왜 모두처럼 -.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는데,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생각했어요. 이 낯선 사람은 대체 누굴까. 그리고 폭풍처럼 아프게 심장이 울리기 시작했어요. - 미안해요. 나는 천천히, 또박또박 사과했어요. 미안해요.

흠뻑 젖었던 것도 아닌데. 머리카락 끝과 소맷부리만 젖을 정도로 약하게 내리는 비였는데. 그런 내가 그는 내내 창피했던 걸까요.

난 빗방울이 몸에 떨어지는 감촉을 좋아해요. 가늘게 열리는 공기가 나를 끌어주는 느낌도. 그런 것들을 그에게 난 이해시켜야 했던 걸까요.

왜 오늘 아침 갑자기 이 아득한 일이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도 없이 오래전 일인데. 이젠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목례할 수 있는 시간이 흘렀는데.

새가 울듯 심장이 떨리고 비가 이어졌다 끊어졌다 해요. 오늘은 내내 이렇게 심장이 크게 뛸 것만 같아요. 나는 내색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 서류를 뒤적이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커피를 마시고 가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겠죠.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살그머니 창문을 열고 몸을 내밀어 빗방울을 맞을 거에요. 이마에, 볼에, 입술에 떨어지는 빗방울. 차갑고도 뜨거운 감촉을.

심장은 화답하듯 울리겠죠. 아픔이 아니라 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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