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랑하는 친구들과 사랑하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냉면은 겨울에 먹어야 제일 맛있지만 살짝 더워지려고 할 때도 좋아요. 아니, 사철 다 좋아요. 평양냉면의 맛은 아는 사람이라면 냉면 그릇 앞에서 저절로 춤을 추게 만드는 마법이지요.
나는 딱히 식탐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영혼의 음식이 있어요. 마음이 가난할 때, 몸이 고달플 때, 구름이나 비가 등을 밀 때 그 앞에 가서 앉으면 따뜻하고 커다란 손이 토닥토닥 조심스레 쓰다듬어주는 것만 같은 음식들이죠.
내겐 국수가 그렇습니다. 면은 가늘고 국물이 가볍다면 더더욱 좋아요. 사실은 오래된 골목길 허름한 국수집에서 막그릇에 말아 내어주는 삼사천 원 하는 국수가 제일 좋아요. 고명이라고는 대충 썰어넣은 지단 몇 개에 양파를 듬뿍 썰어넣어 단맛을 낸, 멸치육수를 기본으로 한 잔치국수. 젓가락 끝에 조금 집어올려 호로록 빨아들이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입니다. 언제부터, 도대체 왜, 국수가 영혼의 음식이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아요. 하지만 쓸쓸한 날이면 나는 홀린듯 국수집을 찾아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 앞에 앉아요. 국수를 먹는 일은 영혼을 씻는 일, 기도하는 일과 닮았어요.
나한테 상을 주고 싶은 날에는 초밥을 먹어요. 물론 오마카세처럼 비싼 코스로는 먹지 못하지만요. 요가원 앞에 조그맣지만 단골이 많은 초밥집이 있어요. 주말 요가 수업이 있던 때엔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끔 가곤 했지요. 다찌석에 앉으면 내가 먹는 속도에 맞춰서 한 점씩 올려주시곤 해요. 느리게 먹는 편이라 가끔은 한참 기다려주실 때도 있어요. 첫 점을 올려주실 때, 그리고 마지막 하나를 주실 때 외에는 달리 말을 걸지 않으셔서 마음이 편해요. 나는 느리게 먹고 셰프님은 느리게 주시죠. 분명히 눈은 다른데 두고 계시는데 다음 것 먹고 싶다, 고 생각할 때쯤 또 하나를 올려주세요. 오래오래 가고 싶은 가게에요. 오래오래 거기 있어주세요.
채소를 좋아해요. 생채소를 아삭아삭 먹으면 생기가 돌아요. 채소가 품고 있는 푸릇한 맛이 너무 좋아서 고기를 먹으러 가도 배추만 몇 접시 먹어요. 배추는 어쩜 그렇게 달고 맛있을까요.
여름에는 채소를 많이 먹을 수 있어 행복해요. 차가운 음식을 먹어도 몸이 식지 않으니까요. 소쿠리 가득 양상추, 배추, 로메인, 샐러리, 청경채 … 좋아하는 채소들을 한가득 먹으면 코끝까지 푸른 향이 몰려와요. 채소가 품고 있는, 강하지 않지만 싱그러운 향이. 그럼 손끝 발끝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에요. 곧 채소가 맛있는 여름이 와요. 야호-
여행을 가면 꼭 아이스크림을 먹어요. 유명한 곳이 아니라도 좋아요. 사실 걷다가 우연히 만난 시장 모서리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파는 소프트크림이 제일 좋아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그곳의 영혼이 몸에 들어오는 느낌이 들어요. 나의 여행은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완성이 되어요.
아마 단 것에는 장난꾸러기 악마가 깃들어 있어서가 아닐까요. 조금 사악해지고 싶을 때, 단 것을 먹어요. 내 안의 장난꾸러기 악마가 양팔을 흔들며 환호해요. 단 것의 힘으로 눈이 밝아지고 기운이 나고 조금은 배짱있게 저 문 밖 세상과 마주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용기가 생겨요.
아프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몇 마디 평범한 문자만 주고받았을 뿐인데, 친구는 석류즙을 보내줬어요. 아무 말 없이 보내줬어요. 석류를 열면 붉고 맑은 알이 빼곡해요. 내가 하지 않고 가만히 눌러놓았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친구에겐 들렸나 봐요. 친구는 붉고 맑은 마음을 보내줬어요. 투박한 종이상자 안에 가득한 파우치를 보고 눈물을 흘렸어요.
브레히트의 시를 빌리지 않아도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는 모두 건강해야 해요.
그래서 여행을 갑니다. 저녁 기차를 타면 맥주를 마셔요. 빠르게 흘러가는 건물 사이로 그날의 하늘이 사라지고 밤이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조금씩 취해요.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어서 이 기차를 탔어요. 사라지고 싶은 마음과 함께 흘러가기 위해서. 기차는 하염없이 달리고 나는 조금씩 맥주를 마셔요. 거품처럼 일어났다 사라지는 생각들을 마셔요. 기차가 역에 멈추면 나는 가방을 챙겨 내리죠. 사라지고 싶은 마음은 선반에 올려두고. 내 마음을 싣고 기차는 다시 어디론가 가요. 나는 달아오른 얼굴로 낯선 플랫폼에 서 있어요.
이국의 여행지에 앉아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며 다정한 목소리를 엿들을 날은 언제쯤 다시 올까요. 그날이 오면,
다시 걸어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