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저문 자리에도 아름다운 색을 남겨

by 별이언니
KakaoTalk_20210503_094111098.jpg


어제는 비갠 후 하늘이 너무 예뻐서 산책을 나갔습니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면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없는 하늘과 구름만 볼 수도 있지만, 어제는 친절하게 인간의 마을에 가까이 내려와준 구름을 맞이하고 싶었어요. 휴일이라 연기가 나지 않는 굴뚝에서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납니다.

겉옷을 걸치지 않고 얇은 티셔츠 한 장만 입었는데도 조금 걸으니 등에 땀이 살짝 배는 날씨. 볕이 따뜻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햇볕의 손바닥에 얼굴을 기대고 기분좋게 걸어가요.



KakaoTalk_20210503_093630691.jpg

그러다 만났습니다. 올해의 꽃이 저문 자리.

꽃은 저문 자리에도 저렇게 아름다운 색을 남기는군요. 꽃진 자리는 그늘도 환하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네요.

남은 봄의 시간속으로 제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색을 조금씩 놓아주면서 꽃은 저렇게 마르고 투명해집니다.

꽃진 자리에 아직은 연한 잎들이 올라와 푸릇푸릇하더군요. 내가 끌고온 햇볕이 점점 뜨거워지면 저 잎들은 무성한 녹색이 되어 우거지겠지요. 그럼 나는 살짝 무섭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여름의 잎사귀들은 기름져서 울창한 생명력에 늘 말을 잃곤 하거든요.

하지만 얼른 여름이 왔으면 좋겠어요. 여름의 굵은 빗방울이 흙을 적시고 이제 태어난 어린 잎들이 우락부락해지는 것을 보고 싶어요. 친해질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나무들이 한 뼘 자라고 세상의 시계가 또 한 칸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어요.

자라는 것은 축복이에요. 그것이 무엇이든.

그리고 저렇게 아름다운 그늘을 남기고 간다면 잠시 곁에 머물러야 해요. 나라도.

꽃의 색이 내 그림자에 남긴 흔적을 오래 어루만졌어요. 올봄이 내게 준 선물이에요.

매거진의 이전글이불빨래하는 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