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은영 시집 <관목들>

by 별이언니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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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암 지대에 있는 모리스 호텔. 손님이 없는 빈 호텔을 지키는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는 모리스 호텔과 이곳의 경계에 있다. 모리스 호텔 연작 사이에 간간히 연작의 제목을 따지 않은 짧은 시들이 들어 있다. 계절에 대한 시들이다. 나는 그 계절이 모리스 호텔이 있는 마을, '바람이 많이 불며 여름에 선선하고 겨울이 추운 석회암 지대', '빙하기에 살아남은 식물들의 피난처' , ' 몇 세기 전의 채석장도 있으며 송어 낚시에 적절한 계곡이 멋'진, 하지만 '평범한 시골 마을'의 풍경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녀가 문득 고개를 들면 익숙한 천장 아래 그녀가 감싸안고 있는 무릎의 동그란 무늬처럼, 그 계절들은 내게 가깝고 그래서 그녀가 밀어내지 못하고 가만히 곁에 두고 있는 무엇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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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내 문지방의 마음으로 슬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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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지인들이 모여 꿈꾸는 집에 대해 왁자지껄 떠들었다. 나는 할말이 없어 뒤로 물러나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달아오른 얼굴로 친구가 물었다. 넌 어떤 집에 살고 싶어?

... 음?

......으으으음..... 나는 호텔에 살고 싶어.

부드럽고 폭신하지만 내것이 아닌 이불에 머리를 두고 쉬고 싶어. 단정하지만 취향이라고는 없는 몰지각한 인테리어 속에 어색하게 앉아있고 싶어. 아침에 떠났다가 저녁에 돌아오면 모든 것이 새것이 되어 있는, 머리카락 하나 남아있지 않는 살풍경 속에 머무르면 슬픔도 희박해지겠지,

라는 속내는 눌러두고 신나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가방을 꾸려 도시에서 도시로 여행하며 살고 싶네, 하고 웃었다. 하지만 예민한 친구는 내 마음을 읽어버려서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말했다. 애착을 가져, 친구야. 애착은 소중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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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리스 호텔에 머무른다면. 내가 장기투숙할 그 방은 점점 내 흔적으로 어질러지겠지. 사려깊은 그녀는 내가 산책길에 주워온 나뭇잎이나 조약돌 같은 것들은 치우지 않고 둘 것만 같으니. 자주 팔꿈치를 얹는 창틀엔 내 냄새가 묻고 침대는 내 몸의 형태대로 망가지겠지. 좋아하는 이불의 촉감이 생길테고, 로비에 내려가는 시간 같은 것도 시간표처럼 정해질거야. 말이 없는 모리스와 가끔 필담을 나누겠지. 우르릉 거리며 겨울이 올 때까지 머무를 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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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에 눈물이 차올라 - 나는 모리스 호텔의 카운터에 앉아 있는 그녀 곁에 쪼그려 앉아 호텔의 무거운 현관문을 바라본다. 오늘도 새 손님이라고는 한 명도 찾아오지 않은, 지도에서 사라진 것만 같은, 하지만 고적한 가구에서 흘러나오는 나무 냄새며, 쌍둥이 할머니들의 속삭임이며, 정기적으로 꾸르륵거리는 배수관이며, 모든 것이 지금 여기보다 더 실감나는 모리스 호텔. 가만히 눈을 감으니 내 뺨을 스치며 흔들리는 커튼의 가벼운 촉감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펜을 떨어뜨려 흠이 생긴 다갈색 책상과, 연한 베이지 스트라이프 벽지. 적당히 무겁고 포근한 이불의 촉감 같은 것.

집은 아직 무리지만, 이제 나는 방 정도는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조금 용감하게, 취향을 발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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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호텔에 어서 오세요. 기차를 타거나 자동차를 직접 몰고 오세요. 이곳은 평범한 시골 마을이지만, 그리고 평범한 시골 마을에 흔히 있을법한 작은 호텔이지만, 당신은 여기서 '머무름'을 발견하게 될지도 몰라요.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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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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