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친하게 지내는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살짝 놀란 적이 있다. 난 격렬한 감정에 휩싸였을 때, 나에게서 벗어나. 격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남을 보듯 물끄러미 바라봐. 그렇게 감정을 건너가. 아, 해리의 과정을 나만 겪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과 서글픔이 몰려왔다.
커다란 감정이 나를 움켜쥐었을 때, 나는 몸을 웅크려 한없이 작아지거나 완전하게 사로잡히기 전에 몸을 비틀어 빠져나온다. 그렇게 한꺼풀 벗어난 나는 묘한 어리둥절로 감정 속에 표류하고 있는 나를 본다. 가만히 바라본다. 연민도 동정도 분노도 없이. 그렇게 나를 보호한다,
고 믿었다. 단순한 회피인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시를 쓰면서 감정의 차가운 얼굴에 뺨을 맞대고 견디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몸을 떨 때 감정의 칼날이 나를 베어 쓰러뜨리지 않도록 시가 나를 감싸안았다. 시를 쓸 때 나는 묘하게 냉정해지는데, 어찌 보면 그것이야말로 완전한 해리 - 분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모선생이 나에게 네 안에 있는 불을 긍정하는 일이 평생의 숙제가 될 것이라고 한탄했다. 얼굴을 어루만지면 손끝에 느껴지는 표정은 꼭 남의 것만 같다. 희노애락애오욕을 밖으로 발산하며 사는 사람의 감정은 사실 가난할 것이라고 혼자 생각한 적이 있다. 감정을 내어놓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뜨거울까. 나는 얼마나 뜨거울까.
이미 이 번뇌의 세상을 버린 선생의 산문을 읽으며 사람은 누구나 크든 작든 자신만의 숙제를 앓는 거구나 생각했다. 그것이 기도하는 일이고, 그것이 부처의 말씀을 들춰보는 일이며, 그것이 스님이 되고 싶지만 스님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님이 되고 싶어 스님이 되는 이는 스님이 되는 일이 그의 숙제가 아니다. 우리가 평생을 안고 가는 숙제는 평생 풀 수 없기 때문에 숙제다. 단테는 아홉 살에 만난 베아트리체를 평생 사랑하고 사랑하다 못해 위대한 걸작 <신곡>을 썼다. 하지만 그가 베아트리체를 정말 여성으로 사랑했다면 <신곡>을 쓰는 대신 그녀의 창 아래 매일같이 찾아가 노래라도 부르지 않았을까.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사모함' 이라는 행위였고 명제였고 삶의 숙제였다. 그것이 아름다운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매일 첫 페이지만 보고 끙끙거리는 숙제는 제출해도 꾸지람만 들을 뿐이다. 오답투성이일지라도 페이지 가득 무언가 써내려갔다면 응원이나 격려, 잘하면 해답 - 그런게 있겠냐마는 - 의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몇 겁의 오답지를 넘기며 간절히 무언가를 찾고 있다. 주춤거리며 나도 나아가고 있다. 느리고 더디고 힘들지만.
선생은 우리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오답지를 남겨주었다. 선생의 부처도, 선생이 사랑하고 사숙했던 큰스님들도 모두 선생의 삶이다. 작가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연재했던 <가족>이라는 소설에는 선생의 가족사가 그대로 나온다. 아이들의 이름도 그대로 나오고, 아내와 있었던 일, 어머니의 삶 그리고 죽음도 모두 생생하다. 이 소설을 집필하면서 선생은 부처는 내 집에 있는 나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우울이 턱까지 차올라 공기마저 차가워질 때, 선생은 산으로도 가고 친구에게로도 가고 행랑객으로 떠들썩한 계곡을 올라 산 꼭대기 절로도 갔다. 하지만 뭐든지 열심인 아내 황정숙 여사가 그의 부처였고, 할아버지가 약속을 지키는 것을 차분하게 두 달이나 기다려주는 손녀 정인이가 그의 큰스님이었다. 답에 대한 큰 힌트를 얻고 이 생을 마쳤으니 윤회의 한겹을 돌아 다시 세상에 싱그러운 한톨로 태어났을 때 선생의 숙제는 갱신될 것이고 써내려가는 답들은 더 치열하고 청량할 것이다.
오늘도 한 줄의 오답을 여기 적는다. 오늘도 치열하게 산다. 나의 감정이 나를 사로잡을 때, 무너지지 않고 맞이하기 위해서. 그렇게 나를 긍정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