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하 시집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by 별이언니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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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두운 우물에 들어가 웅크리고 앉아있을 때 어떤 서정도 닿지 않는다. 몸이 너무 피곤하면 꿈도 꾸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긴 잠을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피곤하고 슬픈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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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정서는 깃털처럼 날아와 나를 건드린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시 앞에서 무장해제된다. 시 말고 또 있을까. 아무리 못난 순간의 나라도 기어이 찾아와 함께 머물러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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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누군가 상호호혜의 원칙을 말하길래 웃으며 상호 애인이 호혜란 거지, 라고 싱거운 농담을 던졌다. 생각에 잠겨있던 일행 하나가 화들짝 놀라며 상호 연애해? 애인 이름이 호혜야? 라고 해서 왈칵 웃음이 터졌다. 웃다가 울며 내가 상호선배 연애해야지, 그럼 좋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찐사랑 있으면 좋겠네, 하자 친구가 쥐어박으며 너나 해, 네가 제일 문제야, 하고 야단쳤다. 농담이 진담이 되는 순간은 공기가 차가워지기도 하는데, 다른 친구가 쟤는 시랑 연애하는 거 아냐? 하며 분위기를 들어올렸다.


응, 맞아, 정말 나쁜 애인이야, 시는.


질나쁜 연애에 멱살 잡혀 질질 끌려가도 내가 시를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가장 망가졌을 때조차 날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둡고 힘든 어떤 순간을 시가 내 손을 잡아줘서 빠져나왔다. 시가 만나게 해준 귀하고 빛나는 인연들도 있다. 그래서 지금 빛과 그늘의 경계에 서늘한 내가 있다. 완전한 빛속으로 걸어들어갈 순 없지만 적어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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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인에게도 시란 그런 애인이 아닐까. 어떤 슬픔도 아픔도 없이 평탄하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이 있더라도 - 아니 그이의 마음엔 차마 말하지 못한 상처가 얼마나 많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슬퍼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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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 하는 사람은 사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 달려가려는 발을 묶고 뻗으려는 팔을 서로 움켜쥐어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일. 마음이, 결코 차가워질 수 없는 마음이 나부끼는 어느 순간. 그것이 아무리 질이 나쁜 무엇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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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 되는 중독이 있다.


시인이여, 오늘도 세상의 모든 감정을 쓰다듬는 이여. 오늘 당신이 만진 모든 것들이 조금 더 아름답게 윤이 나겠죠.


당신의 마음도 그렇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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