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 시집 <호랑나비>

by 별이언니
어머니, 깊은 계곡에서는
나무가 말을 시킨다고 하네요
불빛도 없이 잎사귀가 웃기도 한대요
그 웃음을 느낄 때
영혼이 삐꺼덕 열린답니다
만신창이로 쓰러지며 우리는 영영 작별을 하는 것 같지만
지하수가 돌멩이 사이를 지나쳐
어두운 벌레들의 숨소리
속으로 흐르듯이
드디어 맨몸이 된다고 해요
거기서 우리는
새로 시작하는 걸까요

- 황규관 시 <호랑나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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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아주 오래전 우리가 아직 젊고 피가 뜨거웠던 무렵, 술을 마시고 눈이 그윽해진 사람들이 종종 묻곤 했다. 넌 왜 시를 쓰니.


그때나 지금이나 난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게 시를 읽고 쓰는 일이란 그냥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처럼 별일도 아닌 것이 별일이 되어버린 것, 별일인 것이 별일이 아닌 듯한 것이니까. 거창한 포즈가 아니라 정말, 그냥 내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감히 이렇게도 말해보았다. 시인은 단지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이 시를 쓰는 일인 사람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이 바람, 나비 한 마리가 아니라 나비떼가 와도 날개를 가누지 못하고 어디론가 쓸려가버릴 것만 같은 강풍 속 휘어진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들판의 시는 무엇을 말하고 있나.


1.

시인은 아픈 지구를 염려하고 그 지구 위 살고 있는 문명인 - 아픈 인간을 근심한다. 읽는 내내 염려와 근심이 적극적으로 와닿았다. 바라보는 일이 장기인 내게는 꽤나 뜨거운 방식이라서 시인의 밤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술을 마시든 책을 읽든 누구의 멱살을 잡든 가로수가 잘리는 방식을 두고 공무원과 투닥거리든 그가 세상을 염려하는 방식은 손발이 움직이는 것이라 몸이든 마음이든 상할 일이 많을 것도 같았다. 책 말미의 에세이에 시인이 김수영을 데려온 것도 알 것만 같았다. 젊은 시인이여, 침을 뱉어라. 몸으로 시를 써라.


2.

그러나 이 시인에게서 읽히는 감정은 젊은이의 투기가 아니라 속수무책의 달관도 섞여있어서 마음이 가라앉는다. 비판과 불화의 감수성에게 지금의 세상은 멀미가 날 정도로 빨라서 손쓸 새도 없이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고야 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시인이 딛고 있는 반석, 생각의 시금석이 있다. 아무리 하늘이 빠르게 변한다고 해도 답은 하나의 뿌리에서 온다. 그건 "어머니도 알아들을 수 있는 시, 잃어가는 고통과 슬픔을 솔직히 나누는 문학, 살아있는 동안은 끊임없이 앓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일"을 놓지 않는 것이다.


3.

실용의 세상에서 무소용의 시가 왜 필요한가요,라는 물음에 나는 이렇게도 대답했던 것 같다. 시는 우리의 영혼을 바꾸니까요.


시는 마음의 일, 인간은 마음의 생물.


마음을 많이 앓던 시절, 나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진통제 한 알을 먹었다. 마음의 통증을 몸에 쓰는 약으로 다스렸다. 그때 알았다. 마음도 몸의 일부라는 것을. 아니, 마음이야말로 육체에 고루 퍼져있는 작은 세포, 신경줄기와 같은 것이라 마음은 곧 몸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이 물질의 세상을 바꾸는 것, 꿈으로 밀고 가는 것도 결국은 마음의 일이다.


4.

저 바람에 휘는 나무 위,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나비 한 마리가 보인다. 그건 휩쓸리지 않으려는 마음, 시인의 시. 나는 물끄러미 그 마음을 바라본다. 마음이 있는 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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