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

by 별이언니
그때 나는 안이 그런 죽음으로 자신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또 한 번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만약 아버지와 내가 자살을 한다면 - 우리에게 그럴 용기가 있다면 - 우리는 그 일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영원토록 불안해하고 편히 잠들 수 없도록 사정을 밝히는 유서를 남겨놓고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하지만 안은 자신의 죽음을 자살이 아니라 사고사로 여길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그곳은 사고가 잦은 장소였고 안의 자동차는 커브길에 약했다. 그것은 오래 지나지 않아 우리 마음이 약해졌을 때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선물이었다.
다운로드 (43).jpg

새벽에 잠에서 깨어 아직 어두운 방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



문득 손을 올려 슬픔의 얼굴을 쓸어본 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실도 그러했을까. 아직 간밤의 쾌락이 남아있는 몸에서 문득 밀려나온 어느 감정을 마주하고 슬픔이여 안녕, 인사를 건넸을 때. 세실의 슬픔은 생생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그녀 코앞까지 다가와 차가운 숨을 뿜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젊은 영혼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차분하고 울적하게, 무언가 빛나는 것이 부서지는 기분으로 안녕, 인사를 건넨다. 세실의 생은 그렇게 찬란한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안은 세실에게 슬픔의 표정을 알려주고 떠났다.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는 세실의 육체에 단 하나 무겁게 가라앉은 감정으로.



나는 안을 이해했다. 그녀의 감정은 세실에 못지않게 격정적이고 뜨거웠을 것이다. 안의 불안, 안의 행복, 사랑하는 남자의 팔에 기꺼이 갇히는 매혹. 나는 세실을 이해했다. 젊고 사나운 육체, 이제 막 눈을 뜨는 설익은 감정들. 그녀가 열일곱 살이기에 그녀는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어떠한 잔혹한 짓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뜻 모를 불안이 알려주는 파국을 향해 기꺼이 몸을 던질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안은 세실을 그저 지키고 다독여야 할 어린아이로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실은 알고 있었다. 안이 그녀의 스승이 되리라는 것을. 살아간다는 일의 비밀을 알려주리란걸. 한사코 밀어낸 것은 세실과 안이 등을 맞댄 쌍둥이여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내 안에게서 세실을 읽었다. 안 자신도 알지 못했을 표정을. 그녀가 생의 어느 모퉁이를 돌면서 영혼 깊숙이 봉인해두었던 떨림을. 세실은 안의 얼굴에서 그걸 읽어서 아팠으리라. 너무 가볍고 아름다워서 손가락 하나로도 뭉개버릴 수 있을, 연약하고 찬란한 표정.



어두운 절벽으로 몸을 던졌을 때 안은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가 정원의 문을 열고 바람 부는 들판으로 나왔을 때 예견된 아픔. 사랑은 고통이다. 사랑은 비린내가 난다. 안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녀가 갈망한 것이 세속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한사코 부인한 것이다. 그녀는 사랑을 들어 올려 고상한 감정의 선반에 올려두고 장식했다. 그러나 사랑은 생생불식 움직이는 짐승의 내장과도 같은 것이라 피비린내를 풍긴다. 그녀가 입술에 가져다 댄 것이 독이 든 성배가 아니라 향신료가 가득한 이국의 수프라는 것을 인정했다면 그녀는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은 그늘진 영혼을 갖게 되었겠지. 사람들이 머리를 기대고 쉴 수 있는 어둠이 그녀에게도 깃들었을 것이다.



안은 죽고 세실은 살아남았다. 슬픔에게 인사하면서, 슬픔의 차가운 얼굴을 손가락으로 쓸면서 아침을 맞는다. 산다는 것의 어리석음으로 -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흥분과 열정 속으로. 그건 프랑수아즈 사강, 어린 천재의 영혼이다. 해가 뜬 동안은 사랑을 하고 해가 지고 난 다음엔 홀로 글을 썼던 여자 -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던 사람 - 그러나 "문학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이었다. 최선의 것이며 최악의 것이자 치명적인 것으로 일단 그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나머지 것들은 그 정도의 가치가 없었다"라고 말하는 작가. 살아있음이라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온몸의 감각을 열어 불꽃처럼 살고 그 재를 그러모아 글을 쓴 사람. 사강이 눈을 뜬 새벽, 여윈 손가락으로 쓸어내린 슬픔의 표정은 무엇이었을까. 슬픔이여 안녕, 인사를 건넬 때 그녀는 웃고 있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진 필립스 <우물과 탄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