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필립스 <우물과 탄광>

by 별이언니
잭은 내가 침대 끝에 앉아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는 걸 좋아했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틱택토를 했고, 졸려서 눈꺼풀이 축 늘어지는 게 보이는데도 잭이 눈을 감지 않으려고 애쓰면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당신은 나의 햇살>을 불러주었다. 잭은 혹시라도 내가 떠나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제발 나의 햇살을 빼앗아가지 마요'라는 가사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무도 나의 햇살을 빼앗아가지 못해요'라고 바꿔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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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식을 데려가 착한 사람들의 우물에 던져버리는 여자라면 슬픔에 빠져 있었을 거예요. 그 여자가 미쳤을지도 모르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집의 마룻장이 썩어 뛰어노는 아이들조차 알아서 피하는 집, 먹을 것을 염려하고 땔감을 염려하는 흑인 탄부 조나는 정중히 하지만 묵직하게 말한다. 백인들의 세계의 한편에 사는 가난한 흑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슬픔이라는 말은 너무나 무거워 앨버트뿐 아니라 나도 순간 숨을 멈췄다. 죽은 아이를 남의 집 우물에 버리는 여자를 지금까지 미친 여자나 사악한 여자로 보았던 '일반적인 시선'. 그러나 조금만 고개를 들어보면 내일 먹을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웃들이 가득한 가난한 탄광촌. 남편들은 탄광에서 죽고 홀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여자들은 전 남편의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결혼을 한다. 사랑이나 욕망이 멈춰야 피임할 수 있는 가난하고 처절한 시기, 먹을 빵이 없어도 배는 불러오고 아이는 태어난다. 그리고 아무리 사랑으로 감싸 안아도 아이들은 죽는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는 나무 밑, 가족들만 아는 어느 장소에 천에 감겨 묻힌다. 비석도 없이.


그러니 죽은 아이가 천국에 닿게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우물에 던져 세례를 받게 해주고 싶었던 여자는 슬픔에 빠져 있고, 슬픔에 잠겨 미쳤다. 아이가 우물에 떨어지는 순간, 여자도 슬픔에 떨어졌다. 아이는 두레박에 걸려 세상으로 나와 부검되고 화장되어 묻혔지만 여자는 아이를 던진 그 달빛 없는 밤에 갇혔다.


우리 집 우물에 아이를 던진 사악한 여자를 찾아라 - 로 시작한 소설은 범인 찾기의 스릴이나 명민한 분석도 없다. 주체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앨버트는 본능적으로 그 불운한 모자의 사정을 짐작하고 캐지 않으려 하고 불화를 싫어하는 리타는 꺼림칙한 일이 평화로운 가정으로 들어오는 것이 싫다. 현장을 목격한 둘째 딸 테스가 계속 악몽을 꾸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벌레에게도 안부를 묻고 싶을 만큼 착하고 아름다운 첫째 딸 버지는 어느 날 궁금하다. 자식을 우물에 던지는 여자는 누구인가. 주위를 둘러보면 아버지를 사랑하고 자식들을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세계를 가득 채울 만큼 빛나는 어머니 리타가 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집은 늘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고 식탁은 따뜻하다. 부모라면 이렇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버지와 해 질 녘 우물가에서 자신만의 상상을 펼치는 시간을 되찾고 싶었던 테스는 범인 찾기에 나선다. 그리고 두 소녀의 눈을 통해, 그리고 앨버트와 리타를 통해 우리는 여러 모습의 사랑을 보게 된다. 모양은 여럿이라도 마음만은 진실했던.


이 소설은 풍성하다. 정갈하고 아름다운 문체는 매캐하고 어두운 탄광 마을의 풍경조차 따스하게 물들이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의 영혼에 스며 그들의 성장을 그린다. 사건으로 시작되고 해결로 마무리되지만 거기엔 슬픔과 사랑이 있을 뿐이다. 정의로운 아버지와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는 삶의 폭풍을 견디며 아이들을 키운다. 그러나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이렇게 완벽한 사랑의 공동체가 있다니 - 이건 환상처럼 보이지만, 사실 앨버트는 몸 여기저기가 부서져 가끔 의자에서 한 번에 일어서지도 못한다. 잭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리타는 아이들의 신발에 매일매일 천을 대 기운다. 사랑스러운 버지는 매일 주말마다 사탕을 사주는 부잣집 아이 헨리 주니어보다 사람들을 위해 문을 잡아주고 버지의 말에 환하게 웃어주는 가난한 이웃 남자아이에게 더 끌린다. 세상이 축제 같은 테스의 눈엔 나무 밑 요정도 바람에 사는 벌레도 모두 흥미진진하다. 뼈가 부러진 것이 고통이 아니라 자랑인 잭을 보며 앨버트는 한숨도 없이 생각한다. 잭은 이겨낼 거야, 내가 그렇게 키웠으니까 - 그들은 모두 이겨낸다. 세상 밖의 폭풍을 피하지 않고 서로 손을 잡고 단단히 얽혀서. 가난한 이웃에게 빵과 잼, 사과를 나눠주고도 리타는 몇 개 남지 않은 복숭아로 복숭아 파이를 만든다. 가족들은 환호하며 포크로 파이를 가른다.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풍긴다.


우리 모두 언젠가 한 번은 지나왔을 유년의 달콤한 향기가. 우리 모두 그 안에 안겨 흔들리며 잠들고 보호받으며 키가 자란 사랑이. 비록 삶은 우리에게 언제나 친절하지 않지만 우리가 어떤 표정으로 삶을 마주 대할지는 정할 수 있다. 우리는 슬픔에 매몰될 수도 있지만 슬픔을 씻어내려줄 우물을 품은 집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어떤 가능성을 보았다. 꿀처럼 흘러내리는 슬픔에 머리를 대고 꿈도 없는 단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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