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찰나 같은 점들의 연속선이에요.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는 그 소스 코드에 가끔 인식되고 가끔 연결될 뿐이잖아요. 만약 그 가끔 오는 순간들을 우리가 놓친다면 인생은 정말 찰나가 되어버리죠. 훅 가는 게 아니라 사라지고 마는 거예요. 나머지 모든 것에 드문드문하더라도 그 가끔 오는 연결에는 항상 간절해야만 해요.
엄마의 김밥 맛의 비결은 결국 "맛있어져라"라고 말하는 것. 그걸 깨닫는 데까지 멀고도 험한 길을 눈물 나게 헤쳐온 청년이 있다. 청소년 시절 우연히 만난 전설적인 요리사 조반니 펠리치아노의 파스타 레시피를 찾아 우주의 온갖 우연과 이마가 터지도록 박치기하는 김밥집 아들이 결국 손에 넣은 것은 맛의 황금비율도 아니고 요리사로서의 마음가짐 같은 고리타분한 것도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먹어왔지만 도무지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엄마의 유부김밥. 그건 접시 위에 올라간 김밥 한 줄을 이루는 재료라는 우주의 삼라만상을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 - 즉 삼탈리아 사람들의 애정 어린 말을 빌리자면 시심을 세우는 일이다.
우주를 해명하는 과학을 공부하는 일과 사라져서 아름다운 것들을 굳이 기록하는 시와 땅과 물에서 수확한 것들을 다듬어 맛을 내는 요리는 결국 하나로 통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먹이려는 절박한 정성. 사랑하는 것들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어 몇 번이고 평행우주를 건너 다시 만나고 또 만나는 일. 원식이 무수한 주방을 순례하며 익혔던 기술과 버렸던 것들 그리고 깨달았다고 믿었던 것들 - 결국은 다음 단계에서 버리고야 마는 것들은 그 단순한 논리로 향한다. 궁극의 맛을 얻었다고 자부했지만 김밥집 아들이 김밥맛조차 내지 못하는 허망함에 망가진 아들의 입에 기어이 밀어 넣는 엄마의 유부김밥. 그 김밥을 말면서 엄마는 "맛있어져라, 음, 맛있겠구나" 수도 없이 되뇌었을 것이다. 그 간절한 마음이 세상에 둘도 없는 맛을 만들어내는 비결이다.
비석의 뒤편에 조반니체로 휘갈겨진 이 마법의 주문에 다다르기까지 원식은 많은 시인과 시를 소환한다. 원식이 사랑하는 시는 위기의 순간마다 원식을 구원한다. 아름다운 언어는 손을 맞잡고 다음 차원의 우주로 그를 밀어 넣는다. 기억하는 가장 그리운 맛을 재현하는 고양이풀이 아무렇게나 자라는 나라, 밥을 먹지 않아도 시를 읽으면 아무 근심이 없는 나라 - 삼탈리아는 환상의 나라다.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기엔 더없이 적합하다. 토끼굴을 통과하는 대신 바다에 빠뜨려지기는 했지만.
작가는 '인생의 비애에 지기 싫어서, 인간이 발명한 것 중에서 가장 우아한 게 유머 같아서' 자꾸 웃기려고 했다지만 결국 '우리는 우주라는 거대한 유머 속에서 태어났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소설은 시종일관 꾱꾱꾱꾱꾱, 뀽뀽뀽뀽뀽 웃으며 사방으로 튀어 다닌다. 그 현란함에 눈을 뺏기지 마시길. 그랬다가는 시심을 도둑맞고 남은 생을 공허한 얼굴로 재미없게 살지도 모른다. 문장 사이사이로 미끄러져 숨어있는 면발과 육수의 비밀을 찾는 이 유쾌한 모험담에 무거운 마음은 잠깐 내려놓아도 된다. 원식과 유쾌한 삼탈리아 친구들과 함께 조반니의 무덤 앞에 섰을 때 당신의 혀에 재현될 맛은 무엇인가. 내 혓바닥에는 입이 짧고 허약하던 손녀에게 정성으로 고아주시던 외할머니의 닭곰탕 맛이 돈다. 음, 맛있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