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유 시집,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

by 별이언니


"우리가 사과를 많이 먹던 그해 겨울에 너는 긴 복도를 걸어와 내 방문을 열고


사과 먹을래


물어보곤 했다. 어느 날은 맛있는 걸로 먹을래 그냥 맛으로 먹을래 그러기에 네가 주고 싶은 것으로 아무거나 줘 말해버렸고


오래 후회했다.


그날 사과에 대해 우리가 갖게 된 여러 가지 사과의 맛과 종류에 대해, 다양한 표정과 억양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길고 긴 낮과 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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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감정은 개울 바닥의 사금파리 같아서


유심히 바라보아야만 안다. 어떤 우연이 눈을 데려가더라도,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닿는다. 이 섬세하고 차분한 일은


흘러가버리는 일들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감정들, 여름 식탁 위의 복숭아처럼 금방 무르거나 상하는 건 아니라서


햇빛이 부풀리고 바람에 단단해진 사과의 일이란


영글어서 물 아래로 가라앉는다. 눈이 따라간다. 마음이 묶여서


돌돌돌 실패가 풀린다. 올이 풀린 마음이


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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