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꽃이 있는 여름 시골집이 좋았다
박꽃은 넝쿨을 타고 올라가 초가지붕 위에 커다란 박들을 굴렸다
가을이 오면 저것들은 푹푹 삶아진 뒤 속이 텅 빈 바가지가 되어
겨우내 정지간 시렁 위에서 덩그렁덩그렁 울릴 것이다"
<박꽃>
밤하늘엔 혜성이 돌아오고 인간 세상엔 오빠도 돌아온다. 혜성은 조금 더 소멸에 가까워지고 오빠는 기억 속 그 오빠는 아니지만. 무대 아래 소리를 지르는 팬들도 예전의 그 팬들이 아니지. 시간은 무심하고도 공평하게 우리를 감싸 안으니 돌아오는 것들은 모두 예전의 모습과는 다르다.
기억을 펼치면 나비 한 마리 사뿐히 떠오른다. 나비는 예전의 그 나비일까. 덮어둔 기억 속 봄은 빛이 바래고 살짝 가벼워졌다. 밤 사이 꽃병 아래 수북이 쌓인 장미 꽃잎처럼.
시인이 불러낸 나비는 무거운 세월을 거슬러, 마치 레테를 가로지르듯, 노곤한 몸짓으로 날아와 손등 위에 앉는다. 모르지만 어쩐지 그 안에 살았던 것 같은 온갖 풍경을 데리고.
기억을 사는 일은 그저 지나간 풍경을 돌려세우는 일만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열심히 기억이 되어간다. 숙성 발효 중. 시간이 쌓여 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박꽃이 환하게 저물어 바가지가 되어가는 일처럼. 오늘도 시가 된다. 시가 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