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또 지나갔으니
8시처럼, 목요일 저녁처럼, 여름날의 긴 오후처럼 돌아오는 중이겠군요
봄에 여름이라고 부르고, 여름에 가을이라고 부르고, 가을에 겨울이라고 고쳐 부르는 것이 당신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둥근 것들, 해와 달,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돌아오는 구두들의 닳은 굽, 뉴욕제과점 모퉁이를 돌아 언덕을 오르는 마을버스들, 자꾸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가방,
그러나 나는 어느샌가 한눈을 팔게 됩니다, 미안해요"
<8時가 없어진다면> 중
어느 날에는 시에 느낌표를 쓸 일은 없을 거야, 생각하고 얼른 고개를 흔들어요. 모퉁이를 도는 순간조차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니, 아무것도 장담할 수는 없어요.
모르는 일이죠, 폭죽처럼 느낌표가 터지는, 축제의 시를 쓸 일이 있을지도.
메아리는 문장부호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 유독 말줄임표와 쉼표가 많았던 시집을 들여다봅니다. 목소리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고 생각했는데 희미하게 되돌아온다면,
조금은 눈물겨울 것 같아요. 손가락을 펼치자 사라져버린 무엇이 쉬었다가 멈췄다가 멀리 흘러갔다가 돌아오는 일이.
그리고 가만히 기다려 메아리를 듣는 이도.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저 기다리는, 앙상한 두 귀도. 무덤에서 발굴한 나비의 뼈를 닮은.
드문드문 지워지고 모서리가 닳은 마음, 선명했던 색도 바래고 뜨거웠던 몸도 식고 거칠고 성마르고 애달프고 눈물겨운 모든 실감들이 사라졌지만,
기어이 돌아와 내게 안기는 마음. 활짝 날개를 펼치고 내게서 달아나렴,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발이 묶이고 눈이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하고 머물렀던 나에게
깃드는 이 감정의 야윈 얼굴을 쓸어봅니다. 피곤해 눈도 뜨지 못하는, 가냘픈 윤곽을 어루만지노라니,
알게 됩니다. 사실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던 일이라는걸. 나와 함께 불타고 삭고 얼어붙고 무너지고 바람에 흔들리느라
둥글어진 무릎뼈라는걸.
그러니 어서 와요, 내가 어둠 속에 떨며 속삭인 당신이라는 이름. 그 비밀 위에 주저앉아
손가락으로 시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