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없는 것들 투성이야
우리 모두 여기서 가족도 없이 살잖아
친구도 없고
가끔 생각하면 진짜 삶도 없는 것 같아
그래서 말해줄 수 있어
홀로 사는 삶은 정말이지 가혹하다는 걸"
노아도 방주에 뭍의 모든 짐승들을 암수 한 쌍으로 실었다고 했는데 시간 터미널에서 무서운 세상을 피해 고요한 여생을 즐기고 있는 친구들은 딱 한 마리씩이다. 그들은 멸종에서 가까스로 구원받은 생명들이며, 그러므로 시간 터미널에서 그들이 보내는 시간은 삶이라고 부르기는 애매하다. 나는 그 시간이 죽고 난 후 꾸는 꿈처럼 느껴졌다. 모든 생명에게 신이 마지막으로 온정을 베푼다면 죽음을 지나 육체는 풍화되더라도 형체가 남지 않은 눈동자 안에서 아련하게 재생되는 꿈.
플라멜의 멸종은 클래런스의 사랑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얼굴 한 번 마주하지 않은 낯선 생명체의 질투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생명의 순환에서 자리를 빼앗겨버린 저 귀여운 생명체들을 보라. 그들은 몸에 구멍이 있다. 중요한 장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궁금하게 하는 몸의 정중앙에. 그들은 심장과 위장과 폐 대신에 구멍을 가졌고 세상의 모든 소리는 그들을 부드럽게 통과한다. 꽃축제를 벌이며 동굴에서 춤을 추는 귀염뽀작한 플라멜이 정말 우리 곁에 있다면 아마 도넛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게다. 그건 너무 잔인하니까.
사랑 때문에 종 하나를 지구에서 없애버릴 수도 있는, 그것도 수백 번이라도 다시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소리칠 수 있는 생명체는 여기에서는 귀여운 강아지지만, 사실 지구에서 수많은 생물종들을 계속해서 멸종시키며 지구 생태계를 단순화시키고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인간이 아닌가. 미국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지만 역시나 중국 자본이 투입되었음을 의심케 하는, 중국인 과학자의 멸종 생물 지키기 프로젝트는 마음을 끌지 못했다. 모두가 사라져도 나만 있으면 돼,라고 소리치는 얼굴은 역시 인간이 가장 잘 어울린다.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에게 죄를 대신 뒤집어씌우지 말라고!)
전연령 관람가니까 스토리라인은 단순하고 갈등도 다소 쉽게 해소되지만 갈등의 내면은 섬세했다. 성격이 급하고 지나치게 긍정적인 누나가 벌이는 온갖 소동에 휘말려 플라멜생이 지긋지긋한 동생 에드지만 돌이켜보면 완전히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문제는 없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는 때로는 정해진 결말을 뒤집어 전혀 알 수 없는 일로 우리를 데려간다. 흥분한 시베리아허스키와 전자기타를 만난 모차르트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안전한 고립보다는 호기심 가득한 모험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물론 뭐든지 도가 지나치면 안 되지만. 플라멜의 몸에 구멍이 있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보는 내내 할 수밖에 없었다.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