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릉원 정문 왼편에는 짧은 돌담길이 있는데, 벚꽃이 만개한 봄날 저녁에 걸으면 무척 분위기 있고 좋다. 대릉원 돌담길 건너편 쪽샘지구는 아직 유적을 발굴하는 중이라 큰 볼거리는 없는데, 독특하게도 중간중간 오래된 가정집이 있다. 듣기로, 경주의 수많은 고분들이 신라의 무덤이라는 걸 알기 전에는 고분 사이사이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첫 고분을 발굴한 게 1921년이라고 하니, 집 앞 작은 둔덕이 무덤인 걸 알게 된 게 불과 100년밖에 되지 않은 셈이다. 그야말로 죽음과 삶의 공존이다. "
발 닿는 대로 걷다가 이정표를 보았다. '월지'라. 경주는 달의 땅이로구나. '남산'이라. 남녘에 산을 두고 엎드린 동네구나. '삼릉' '오릉'이라. 사이좋게 이마를 맞댄 무덤이 셋 다섯 모여있기도 하구나. 그 사이 자전거가 달리고 아이들이 뛰놀고 저녁밥 짓는 내음이 구수하게 퍼지기도 하겠구나. 경주에서 나도 오래 걸었다. 언덕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커다란 무덤 사이로. 무덤의 그늘에 잠깐 멈추고 이마의 땀을 닦기도 했다. 릉 뒤에 숲, 사이에 마을. 경주는 걷기에 좋은 곳. 머물러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만큼 다정한 곳이었다.
그런데 난 참 경주를 몰랐구나. 이런저런 이유로 경주에 내려와 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걷기 시작한 사람들이 쓴 글을 읽다 보니 내가 놓친 풍경들이 아쉬웠다. 무덤을 기어오르며 놀았던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어 다시 걷는 경주, 혈육을 잃은 아픔으로 멈춰버린 영혼을 데리고 걷다 보니 어느덧 발견하게 된 많은 감정들의 이름이 된 경주, 복잡하고 밀도 높은 삶에서 빈틈 있는 삶으로 이주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란히 걷는 경주.
경주에 사는 사람들이 경주를 걷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경주는 하나같이 맑고 풍요로웠다. 고즈넉한 풍경 사이로 바람 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경주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사는 법을 깨달은 현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쩐지 경주에 오래 머물면 생활에 윤이 날 것만 같았다. 오래 닦아 반들반들 무늬가 흐려진 협탁처럼. 올봄의 꽃을 따 문풍지를 장식한 나무문처럼.
무덤가에 있어도 마음이 편안했던 것은 커다랗고 완만했기 때문이다. 무덤인 줄 몰랐다면 등을 기대고 낮잠이라도 잘 수 있을 만큼. 경주에서 가장 마음을 끌었던 것은 수천 년 잠든 공룡의 등처럼 고요했던 대릉이었다. 무덤 사이로 학이 날고 구름이 흘러가는 곳. 그리고 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다지.
이 다정한 지도를 들고 다시 찾아가고 싶었다. 오래 머물고 느리게 걷고 싶었다.
※ 나는 독립서점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에서 구했답니다. 일반 인터넷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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