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안녕 시집, 사랑의 근력

by 별이언니


"있잖아요, 눈에 밟힌다는 말이요


그 말을 최초로 만들어낸 이는

시인일까요 신일까요"

<나미의 노래처럼 빙글빙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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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힘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망각의 힘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우울이 동력이 되는 사람도 있다. 기면과 불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관성의 시계추처럼 똑딱똑딱, 사는 사람도 있다. 기쁨이, 두근거림이, 호기심이, 해맑음의 손을 잡고 달려나가는 사람도 있다. 가지각색의 이유들, 우리가 사는 방법.


그리고 '씹다버린 껌처럼 근력이 필요한' 사랑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랑의 냄새는 간만 빼고 신문지에 돌돌 말린 따뜻한 순대나 물에 만 밥에 올린 오이지, 오래 곁에 두어 인생의 풍경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벗과 먹는 늦은 저녁의 고추장 수제비와 같다. 새롭고 상큼하고 설레고 잠을 설치며 뒤척이는 사랑이 아닌, '결국에는 다 녹아버릴 걸 알면서도' 떨면서 '사랑해'라고 말해버리는 마음. 그건 전철을 타고 덜컹거리며 들어가는 저녁의 배경과 닮아서 쓸쓸하다.


그러나 이 시인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를 더듬으며 아직 휘발되지 않은 사랑의 흔적을 만지는 사람은 아니어서 시인에게 사랑은 언제나 현재진행형. 사랑이야말로 시인의 영혼 자체라서, 사랑하는 심장 - 오, 이렇게나 질긴 심장이 느리게, 한 박자 걸러서 뛰는 것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누르며 마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


- 멀리 가요?

- 멀리 갑니다.


그렇게 멀리 가는 이.


이 시인은 이미 혀끝에서 톡톡 튀어 오르지만 끝맛이 입술에 흘러든 눈물을 닮았던 <불량젤리>를 선보이고 따뜻하지만 쓸쓸하게 <우리는 매일 헤어지는 중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름을 바꾸어 새로 낸 시집의 제목은 <사랑의 근력>. 제목을 보고 괜히 미웠다. 그녀에게 근력까지 길러야 하는 사랑을 배우게 한 누군가, 무언가, 이 세상이.


그러나 모든 순간, 모든 감정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지 않고 손바닥이 문드러져도 꼭 쥐고 가는 삶의 태도는 아름다워서 나는 이내 시인의 근력을 수긍하고 만다. 척추기립근, 상완근, 하완근, 중든근, 내전근 - 오, 우리를 지탱하는 이 많은 근육들, 고된 이름이여.


당신의 안녕을 바라는 나의 사랑은 내가 어찌할 수 없어서,


불수의근, 두근거리며 사방으로 뜨거운 피를 보내는 심장의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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