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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어간다는 건 고통스러운 것인데
물들어간다는 건 소멸하는 것인데
이 아름답고 황홀한 속마음을 어디에 둘까
"
<툭> 중
그 옛날의 선지자는 사십 일 동안 모래바람이 부는 광야를 헤매고 돌아왔다. 그는 폭풍 속에서 통성기도를 했을까. 가슴을 두드리며 오열했을까. 띄엄띄엄한 말들을 밤으로 떠나보냈을까. 광야에서 돌아온 그의 표정은 낯설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사십 일도 아닌 사십 년이 넘도록 도시의 골목을 헤매는 시인은 어떤 밀어를 하수구 속으로 흘려보냈을까. 우산을 두드리는 흙탕비 속에서 고함을 지르기라도 했을까.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의 새벽을 굽어보며 띄엄띄엄한 말들을 속으로 삼켰을까. 아직도 헤매고 있는 시인의 표정은 아득해 읽을 수도 없다고 한다.
나는 왜 시집을 읽으며 광야의 선지자를 떠올렸을까. 번제를 올리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앙상한 등이 왜 떠올랐을까. 그건 '허름한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누추하고 스러져가는 것들을 보는' 자의 목덜미에 스치는 바람이 '가장 평화'롭기 때문이다. '그 바람을 찾아 오래 떠도는' 일이 이 시들이기 때문이다.
선지자의 바람은 강하고 열렬해 사막에서 돌아오는 걸음은 주저함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시인의 바람은 희미하고 열에 들떠 갈팡질팡한다. 그건 그가 앓고 있는 풍경에 그가 속해있기 때문. 영혼의 일부를 바라보며 병을 얻으니 시인에게 완쾌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그는 가슴을 두드리며 열렬히 울부짖지 않는다.
그저 마른 눈으로 오래 바라본 일들을 이렇게 가만히 종이 위에 내려놓을 수밖에. 세상에 물드는 일이 이다지도 황홀하고 아름다워서 고통에 물든 입술을 달싹거리며 계속 나아갈밖에.
커다란 외투 주머니에 오늘 쓴 시를 넣고 헤매는 그의 투박하고 거친 신발 소리가 바람에 섞여 창문을 두드린다. 휘잉, 뚜벅뚜벅, 덜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