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와 강지혜, 우리는 서로에게 아름답고 잔인하지

by 별이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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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면 간호사가 혈압을 잰다. 그때마다 나는 악몽 속에 있다. 기억나지 않으니 좋은 꿈인가. 간호사가 나를 깨우는 것이 좋다. 나의 죽음 같은 잠에 끼어드는 것이 좋다. 나는 불안한가. 나는 잎이 없는 나무, 얼음이 부서진 숲에 있다. 온도가 없고 바람이 없다. 뿌리에 감각이 없다. 흰빛. 나는 그런 나를 바라본다. 이 나무에 이름을 붙여줘야 할까. 아니야. 저절로 알게 될 이름이 있다. 왼팔이 빵처럼 부풀었다. 간호사가 피가 고인 바늘을 빼고 새 주사를 놓는다. 그렇게 깨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살고 싶어 한다. 바보 같으니. 웬 엄살이야. 죽을 리가 없잖아. 약을 먹고 나무처럼 딱딱해진다. 숲을 불태우면 어떨까. 바보 같으니. 얼음이 가득 찬 곳이구나. 투명하게 다 보이는 곳이구나. 나는 팔에 고인 피를 바라본다. 오늘은 장마처럼 비가 내린다. 링거를 꽂은 환자들이 창 쪽으로 몰려든다. 저녁이 비에 흠뻑 젖어 있다. 나는 원하지 않는 것을 안 할 수 있을까. 나는 자유가 없고, 자유가 없다. 루소는 사람들이 타인의 의지를 지배하려고 평생을 바쳐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생존을 위해서일 뿐인데.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기도를 다 마치고 옆자리 할머니가 도넛을 준다. 나는 그것을 어쩌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다. 설탕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단내가 병실 안에 가득 찬다. 달콤한 잠을 잘 수 있을 거야. 나는 잠들기 전 몰래 병실 공용 화장실로 간다. 쓰레기통에 도넛을 버린다. 너무나 먹고 싶지만 위로받지 못할 거야. 나는 쓰레기통 앞에서 중얼거린다.


이영주 <출렁거리는 마음 안으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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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보니 자정을 막 넘어가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 그녀는 울부짖고 있었다. 난 지금 죽을 거야, 내 앞에 칼도 있고 밧줄도 있어, 약도 한 통 있어, 죽을 거야, 죽을 거야. 나는 가만히 굳어가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 그녀는 왜 나에게 전화를 해서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걸까. 우리는 만난 지 몇 달 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도 회사에서. 몇 달 전 시작한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그냥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소소히 이야기하며 웃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일이 힘든 날이면 퇴근을 하고 술을 한 잔 마실 때도 있었다. 크게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날까. 발가락부터 차가워졌다. 내가 잘 모르는 그녀, 함께 하는 일이 끝나면 아마도 사적으로 연락해 만날 일은 없다고 생각했던 가벼운 사이. 미안했지만, 화가 났다. 그녀에겐 정말 미안했지만 나에게는 이런 일이 낯설지 않았다. 학창 시절부터 이런 일은 잦았다. 친구도 아닌, 평소에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았던 아이들이 어느 날 엉망이 된 얼굴로 찾아와 나도 감당하기 힘든 일을 일방적으로 털어놓는다. 다음 날부터 나는 왕따가 되어 있다. 그 아이들은 나처럼 친구가 없고 소심한 아이들이 아니다. 원래 몰려다니는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는 학교 앞 맛있는 분식집 이야기나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이야기를 한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펑펑 울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냉정하게 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서 가만히 들어주긴 했지만 희미하게 알고 있다. 낯선 아이가 불쑥 찾아와 어두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런 거라고.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깜빡 잊어버린 우유를 다음날 아까워 마시려고 열었더니 상해서 교실 뒤편 쓰레기통에 버리러 가는 것과 같다고. 눈물이 어느 정도 멈추면 머쓱한 얼굴로 낯선 아이는 덧붙였다. 넌 책을 많이 읽으니까 뭔가 내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어, 이건 비밀이야. 나는 비밀을 지켰지만 그 아이들은 나를 믿지 못했고 나에겐 늘 흉흉한 소문이 따라다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런저런 회사를 전전하면서도 반복되는 일. 그녀 앞엔 칼도 없고 밧줄도 없고 약도 없다. 그녀 앞엔 술이 있을 뿐이다. 수화기 너머 낮게 낄낄거리는, 그녀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얌전히 그녀의 술주정을 들어주었다. 죽지는 않을지 몰라도 죽고 싶을 수는 있으니까. 낯선 사람,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사람의 고통도 생생하게 전해오니까. 살이 아리고 심장이 떨리니까. 오래전 일이다.


나는 고통의 연대를 믿지 않았다. 나도 감당하기 어려운 나의 고통을, 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의 힘듦을, 누군가에게 나누어준다는 일이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그것이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괴짜로 소문난 P가 연애를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친한 선배 언니가 내게 농을 섞어 물었다. P도 연애를 하는데 넌 뭐 하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어색하게 웃었다. 아아, 외로워, 연애하고 싶다. 흔한 말들이 내겐 폭력으로 들렸다. 나의 외로움, 나의 힘듦, 나의 슬픔을 나누기 위해, 그걸 해결하기 위해 나의 그늘로 타인을 초대한다는 것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과부하가 걸려서 무릎이 꺾이고 잠을 설쳐도 그건 온전한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시가 있으니까. 아무리 못난 얼굴로 울고 있어도 내 옆에 함께 있는 시가 있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지. 이 아름답고 잔인한 고통의 연대란. 이런 것이 가능하구나. 고통을 나누는 일이. 물론 그것이 치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은 아팠고 아프고 아마도 아플 것이다. 다만 알게 된 것일 뿐. 제주의 햇살 아래 널어둔 이불의 얼룩을 데려가는 공기가 서울의 찻집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에게 다정하게 닿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 고통의 회로를 분석하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더듬고 엎어지면서 계속 나아갈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것. 그걸 알릴 수 있는 사람이 소중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소중한 사람은 나의 고통을 버겁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공감한다는 것. 아마도 그건 편지라는 수단으로 이루어졌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얼굴을 마주 대하고는 여기까지 나아가기 힘들었을 테다. 우리는 모두 조금 결벽하니. 그녀들의 편지 바깥에 머무르며 조금 더 느슨하게 마음을 잇는다. 내향적인 우리에겐 이런 연대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저녁에 이웃 마을의 종들이 울리면 해 질 녘이 떨리듯. '공명'하는 마음이.


결혼은 했으나 아이가 없는 그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그녀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없는 내가 어떤 고통의 지점에 이르러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크다. 어쩐지 알 것 같아, 하는 울먹거림은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느슨하지만 좁고 아늑한 고통의 울타리. 어깨동무하고 머리를 맞대면 우리는 서로가 만든 그늘을 먹먹하게 바라본다.


이 연대가 조금 더 느슨해지면 성별이나 인종, 연령을 넘어설 수도 있겠지. 내밀하진 않아도 묽게 흘러내리는 마음이 있겠지. 그건 애정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고통이라는 것은 그렇게 희석될 수는 없는 것이어서,


나는 그녀들의 얼어붙고 비틀린 육체를 어루만진다. 아파서 잘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으로. 그렇게 쓸어내리는 것이 나의 감정임을 안다. 낯설고 신기한 것을 처음 만지듯 나는 조심조심 나의 마음을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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