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상 천국 같은 그곳에도 뜻밖에 비밀이 하나 있어. 타히티 원주민의 자살률이 매우 높다는 거야. 낙천적인 사람들이 왜 그랬던 걸까? 한 인류학자가 단서를 밝혀냈어. 이들에겐 '슬픔'이란 단어가 없다고 해. 슬픔을 느끼지만 표현할 수 없고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없기에 그것을 정상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자살을 선택해버린다는 거야”
<슬픔을 마주한다는 건> 중
잠이 오지 않거나 아플 때 불 꺼진 방에 반듯하게 누워 라디오를 들었다. 왁자지껄한 세상이 거기 있었다. 정말?이라고 되묻고 싶을 만큼 믿기지 않는 일들도 있고, 잔잔하고 다정한 사연도 있고, 운전을 하면서 야식을 먹으며 한밤중에 저 멀리 펼쳐진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디제이는 정성껏 그 모든 일들을 읽어주었다. 낮은 숨소리, 희미한 웃음소리, 단정하고 안정감 있는 목소리가 내가 모르는, 하지만 분명히 있는 세상을 내 작고 어두운 방으로 데려왔다. 숨이 찰 즈음엔 음악을 들려주었다. 상처 위에 바르는 연고처럼 말간 감정이 밀려왔다. 안심이 됐다. 스르르 눈꺼풀이 감기면 디제이는 고요하게 그날의 바깥일들을 맺으며 인사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잘 자요. 내일 또 뵙겠습니다. 아, 그래, 이 두렵고 막막한 잠을 건너면 또 내일이 있어. 무섭지도 그렇다고 설렐 것도 없는 내일이. 사막처럼 펼쳐진 매일매일이.
하지만 그 매일매일에 이렇게 많은 순간들이 맺히겠지. 새벽에 내리는 이슬처럼 빛나고 공기 중에 뒤엉키겠지.
온갖 사람들의 숨이 뒤섞인 대기야말로 세상.
고독했지만 이어진 것 같았다. 고독했지만 고립되진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창을 열면 늘 불티처럼 빛나는 창이 몇 있었다. 타인의 창이. 불빛은 따뜻해 보였지만 그 불빛 아래의 시간은 따뜻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따뜻하기를 바랐다. 그가, 내가 모르는 낯선 그이가, 고요한 시간을 건너는 중이길.
그런 마음이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