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명상
오후가 되면 살에서 녹내음이 난다. 머리를 빗고 손을 몇 번 씻었다. 커피를 마셨다. 발등이 부어올라 병원에 갔다. 몸속에 전기를 흘려넣는 중이니 휴대전화나 카드를 만지지 말라고 했다. 병들고 찢어진 조직에 전기가 들어왔다 나가고 경련하며 깜빡이는 등불이 흔들리고 내가 만지는 것들은 모두 고장이 난다.
무엇을 잡았을까.
아침에 일어나, 올해가 시작되며, 스무살을 넘기고, 태어나면서부터,
점점 어두워지는 나선의 계단을 내려가는 꿈을 꾼다. 아래는 빛이 스미지 않는 심해. 그런데 언젠가 한번 거짓말처럼 맨 아랫쪽 방에 도달했는데 그곳은 지상에는 볼 수 없는 푸른 빛이 가득했다. 인간은 종종 저 깊은 바다밑은 아무것도 없는 암흑이라고 여겨왔지만 어쩌면 그건 램프의 심지처럼 차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 가득한 공간일 수도 있다. 그 빛을 감당하기에는 인간의 눈이 너무 연약해서 바로 눈이 멀어버리기에 암흑이라고 여겨왔는지도.
간밤에 식은 땀을 흘리며 움켜쥐었던 난간의 녹이 번지는 중이다.
살은 꿈의 기억을 풀어놓는다. 오후가 되어 몸이 느슨해지면 가둬두었던 비밀의 실마리들이 종종 감각을 깨우곤 한다.
손에 밴 냄새는 오래 간다. 아무리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잘못 묻은 얼룩과도 같다. 발목은 흔들리고 사위는 천천히 어두워지고 천천히 어둠 속에 몸이 사라지는 느낌이라도-.
녹의 내음은 안다. 내가 아직 누구도 가보지 못한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아름다움이라 보자마자 두 눈이 불타버릴지라도-.
내가 도착할 그 매끄럽고 차가운 바닥, 사방을 에워싼 푸른 빛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기도하는 손. 이 비릿한 녹내음은 손의 기도가 남긴 기록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