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제 표지판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읽으며, 그 이름 뒤에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생각했다. 앨곤퀸 부족은 그가 살던 지역을 거대한 물, '미시 가미'라고 명명했다. 이 나라의 지명들 뒤에는 얼마나 많은 죽은 목숨과 바래가는 추억이 묻혀 있을 것인가. 기록된 이름들 밑에는 또 다른 이름들이 있었다. 먼지 쌓인 서류더미 속에서 대대손손 전해질 '메이컨 데드'라는 이름이 사람, 장소, 그리고 사물이 진정한 이름을 보이지 않게 감추고 있듯이 말이다.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이름들. 파일러트가 제 이름을 귀에 걸어두는 것도 놀라울 게 없다. 이름을 알게 되면, 꼭 붙들고 지켜야 한다. 기록해서 기억해두지 않으면, 사람이 죽는 것과 동시에 이름도 죽을 테니까. 그가 사는 거리가 메인스 애비뉴라고 기록되어 있긴 하지만, 도시 최초의 흑인 저명인사였던 할아버지를 기리는 니그로들 사이에서는 낫닥터 스트리트로 불리는 것처럼. 그분이 그런 영예를 누릴 만한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제쳐두자 - 사람들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다. 오만하고, 피부색에 집착하는 속물.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데 개의치 않았다. 그저 애초에 그로 하여금 의사가 되도록 만들어준 자질에 찬사를 보낼 뿐. 왜냐하면 십중팔구 평생 남의 집 허드렛일이나 하면서 살 팔자였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거리 하나에 그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파일러트는 머물렀던 모든 주에서 돌멩이를 하나씩 주웠다고 했다-왜냐하면 그곳에 살았던 적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곳에 살면, 그곳은 그녀의 것이다-그리고 그의 것, 그의 아버지의 것, 할아버지의 것, 할머니의 것이다. 낫닥터 스트리트, 솔로몬의 바위, 라이나의 협곡, 살리마, 버지니아.”
어째서 인간은 이다지도 더디 자라는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육체적인 발달뿐 아니라 정신적인 성숙에서도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확실히 느리다. 개는 생후 일 년이 지나면 첫 발정을 하고 어른의 삶을 살아간다. 새끼를 낳고 돌보고 사냥을 하고 영역을 지키고 우정을 나누고 약자를 지킨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서 인간 외의 동물들의 수명은 짧은지도 모른다. 장수하는 거북이에게 가서 묻고 싶다. 말이 없고 걸음이 느려 진중해 보이지만 사실 네 안에는 철딱서니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니?
그 오랜 세월 동안 넌 무엇을 찾고 있니?
태초 이래 고금의 모든 철학자가 물었다. 인간은 왜 사는가. 태어났으니까 삽니다, 심장이 계속 뛰고 있어서 살아요, 죽기 싫으니까 삽니다, 같은 대답이 갈증을 풀어줬다면 세상에 철학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다. 밀크맨의 여정은 이 해묵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오답은 되풀이되지만 좌충우돌 젊은이는 나아간다. 황금을 향해. 백골 옆에 있다는 미지의 황금을 향해. 황금을 왜 찾는가. 밀크맨은 이미 먹고사는 데에 지장이 없다. 흥청망청한 삶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황금이란 아버지로부터의 탈출, 그의 돼지창자로부터 상처받은 누이들에게서의 도피, 매일 밤 밀크맨을 위해 무릎을 꿇지만 비뚤어진 사랑만을 주는 어머니를 잊는 일, 사랑에 몰두한 나머지 떨리는 손에 칼을 들고 매달 찾아오는 옛 애인 헤이가로부터의 해방이다. 구체적이지 않지만 여기가 아닌 어디, 이것이 아닌 무엇을 손에 쥐기 위해 시작한 여행은 기묘한 이야기처럼 여러 사람의 입으로 구전되어 오는 신비로운 솔로몬의 가계도를 탐험하는 일로 바뀐다.
- 그는 하늘을 날았어
하늘을 날았던 자의 후손은 고모의 예언대로 여자로 인해 목숨을 부지한다. 여자의 사랑으로 인해.
밀크맨은 부동산 업자인 아버지 덕분에 고급 슈트를 입고 황금 시계를 차지만 그의 주변은 온통 흑인이기 때문에 괴로운 사람들뿐이다. 아름다운 누이들은 흑인이지만 흑인 배우자를 원하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하고 늙어간다. 피부색을 따졌던 아버지를 일평생 흠모했던 어머니는 산송장처럼 죽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산다. 절친은 백인 보복살인을 하는 비밀결사 '7일'의 일원이며, 그가 버린 연인은 밝은 피부색을 갖지 못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며 고통 속에서 죽는다. 오로지 밀크맨만이 - 사랑에 굶주린 어머니가 최소한의 체온을 바라며 아들이 장성할 때까지 젖을 물려 지어진 별명을 가진 자만이 자신이 흑인이라는 것도, 누이들과 어머니의 희생을 누리고 있다는 것도 체감하지 못한다. 최초의 실감은 아버지를 주먹으로 내리쳤을 때. 기타는 빈정거리며 말한다. 이봐 밀크, 인간이 되어서 너 자신의 삶을 살아.
이 이야기는 흑인의 정체성 찾기라는 성장서사이기도 하고, 온갖 사랑의 구원이기도 하다. 한 인간이, 놀라울 정도로 더디 자라는 인간이, 눈을 뜨고 자신의 의지로 혀를 놀려 이윽고 스스로 이름을 말할 때, 그때 한 인간의 영혼이 깨어난다. 이 생에 착륙한 그만의 이유가 드러난다.
솔로몬과 라이나의 아들이여, 왼쪽 다리가 살짝 짧아 땅에 닿지 못했던 자여, 노래하고 춤추라. 파일러트의 피가 적신 네 발아래 그토록 찾던 황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