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발레리, 드가 춤 데생

by 별이언니

"드가는 언제나 혼자 있다고 느꼈고, 모든 형태의 고독 속에서 혼자 있었다. 성격 때문에 혼자였고, 특출난 그리고 특이한 본성 때문에 혼자였고, 성실성 때문에 혼자였고, 오만한 엄격성 때문에, 굽히지 않는 원칙과 판단 때문에 혼자였고, 자기 예술, 다시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게 그가 요구한 것 때문에 혼자였다."


세상과 불화하는 것이 더 이상 자랑이 아닌 시대는 예술에게도 주 오일 운동과 유기농 식단을 요구한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지며 말랑하던 몸이 딱딱해지고 영혼이 타락하고 정수리에 흰머리가 돋는 일을 진저리 치며 바라보는 일은 없다. 사조가 만들어질 여유가 없다. 더 이상 세상은 거인이 지배하지 않는다. 신이 정중하게 문을 닫고 어느 신비 너머로 떠나버린 인간의 세상은 하루에도 수천 개의 환영이 버섯처럼 돋아나고 새벽이슬에 멸종한다. 끝없는 신생만이 존재하는 시대. 우리는 아라크네의 거미줄에 맺힌 이슬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재앙에 살아남기 위한 몸이 되었다. 순간을 살면서 끝나지 않는 권태 속을 배회한다. 빼곡히 찬 세계의 기둥 사이를 빠져나오느라 끝없이 얇아진다.



이런 어느 날에 몸살을 앓으며 엄격한 시간을 읽는다. 아직 세상에 신의 주춧돌이 남아있다고 믿는 인간들이 짧은 인생을 천 년처럼 살며 놀라운 작품을 만들던 시간. 꿈과 같은 퇴폐의 시간. 자연스럽게 노화하는 정신이 막 피어나는 정신과 충돌하며 벼락처럼 울부짖던 시대. 젊은 발레리가 본 드가는 엄격하고 고독하고 괴팍하고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끝없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자였다. 할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을 돌며 자기 손을 떠난 작품을 모두 가져와 흰 칠을 하고 다시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 무용수와 하녀와 창녀의 몸을 근면하게 관찰했던 사람. 인간의 몸이 닿을 수 있는 천상과 지상의 모든 선을 데려와 형태를 입힌 화가. 드가는 말했다. 데생은 형태가 아니다, 그것은 형태를 보는 방법이다.



아직 작품 속에 불타는 옷을 입고 형형한 눈을 빛내는 예술가가 깃들어 있어 위대한 정신이 세계를 보는 방법을 읽는 것이 예술을 맞는 태도였을 때의 이야기.



어제 읽은 칼럼에서 모 학자는 미래가 서서히 중단되고 있다, 시간이 시계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우리는 통시적인 시각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버추얼 리얼리티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 여기,에 철학적으로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외의 무엇을 볼 힘을 상실한 것이 아닐까.



화가였던 드가는 시력을 잃고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갔지만 세계에 맞닿으려는 노력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는 손을 내밀어 세계를 만지려고 했다. 지인이 죽자 그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기 손을 끌어가 시체를 어루만질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평생 세계를 바라보고 형태로 재현한 사람은 손바닥에 남은 감촉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와 동시대에 말라르메가 살았다. 우주에 단 한 권, 절대적인 시집을 꿈꿨던 시인이.



위대한 시간이 지나가는 황금물결의 저물녘을 우리는 목격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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