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철규 시집 <심장보다 높이>

by 별이언니


"옥상에 새가 죽어 있었다 정갈하게 날개를 몸에 붙이고 발가락을 오므리고 가만히 누워 있는 그것을 보고 걸음을 멈춘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안개가 짙은 아침이었다 서울역 너머 멀리 남산타워 꼭대기까지 안개에 잠겨 있었다 흡연실 유리창들에 물방울이 맺혀 있고 상한 우유를 쏟은 개수대처럼 세상은 뿌옇다 새는 안개를 뚫고 가다가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쳤는지도 모른다 새가 기절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멀리 돌아 흡연실의 다른 쪽 입구로 들어가서 담배를 피웠다 흐려서 잘 보이지도 않는 남산타워를 마냥 쳐다보았다 기압이 낮아서인지 뿌연 담배 연기가 느리게 퍼져갔다 곁눈질로 새가 깨어나기를 바라면서 앉아 있다가 사무실로 내려갔다 한 시간쯤 뒤에 다시 옥상에 올라왔을 때 새는 그 자세 그대로였다 찰나의 고통에도 몸은 오그라든다 몸통보다 큰 날개를 가진 새는 없구나 새의 뼈는 비어있다는데 그래서 두개골도 약한 것인가 눈이 까만 새였다 미동도 없는 눈이 수박씨처럼 까맸다 청소원 휴게실로 내려가 비닐장갑과 비닐봉지를 빌렸다 아주머니도 나를 따라 옥상으로 왔다 비닐장갑을 끼고 새를 들어 비닐봉지에 넣었다 비닐장갑을 낀 손에도 온기가 전해졌다 아주머니가 안됐다는 듯 혀를 찼다 화단에 묻어주세요 네, 그럴게요 이 건물 주변엔 화단이 없는데 나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겨울이라 꽃도 없을 텐데 실이 툭 끊긴 것처럼 삶과 죽음이 나뉘는 순간에 대해 오래 생각하면서 또 담배를 피웠다 엔딩 크레디트도 없이 엔딩 음악도 없이"


<엔딩 크레디트도 없이>





세상의 소리에 깜짝 놀라는 나를 유심히 보는 친구가 있다. 식당에서 준 와인글라스가 부딪칠 때 낮게 울리길래 지나치게 청아하지 않아 마음이 놓인다고 했더니 언니가 소리에 민감하지, 티 내지 않으려고 해도 깜짝깜짝 놀라지,라고 말해주는 친구. 헤어지며 가만히 안아주는 두 팔이 있어 나는 싸늘한 봄밤을 따뜻하게 건너왔다.


낮고 오래 울리는 소리를 닮은 심장을 품고 있어서 우리는 시를 쓴다.


심장보다 높이 있는 슬픔을 건너는 시집을 하루 종일 들고 다니며 읽었다. 하루가 지나면 더 따뜻해질 게다, 하루가 지나도 잊히지 않는 슬픔에 잠긴 사람이 있다.


그럼 우리는 가만히 부딪으며 낮고 오래 공명해야지.


가까운 슬픔부터 먼 슬픔까지. 마른 눈물을 흘리며 몸을 떨어야지.


그리고 팔을 벌리면 따뜻해진다. 서로의 체온이 있어서.


비에 젖은 새들처럼 부리와 날개를 비비며 체온을 나누고 감정을 옮기고 그렇게 살아남는다.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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