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민경 시집 <꿈을 꾸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

by 별이언니


"치유할 수 없는 발가락처럼

치명상은 연속으로 찾아온다 부적

몸을 지키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입니다 무엇 하나 놓쳐서는 안 되는

여러 조각난 사랑 때문입니다


내 목숨을 취하기 위해서 오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되었든 가장 다정한 얼굴로 오길"

<구멍> 중




꿈을 꾸지 않기로 한 사람은 마른 세수를 얼마나 많이 했을까.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문지르다가 문득 손바닥을 보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손금에 마음이 텅 비지 않았을까.


속이 빈 종을 두드리듯 맑은 소리가 나는 사람이 있다. 우물처럼 말간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다.


그가 맨발로 달려온 아스팔트를 나는 모른다. 깨끗한 신발을 신고 있는, 문드러진 발바닥 따위는.


그렇게 말해보며 나는 슬퍼진다. 그의 표정 속으로 도르래를 내린다. 이끼와 자벌레가 창궐하는 구중궁궐 속으로.


겹겹의 문을 열다 보면 가장 안쪽. 마당으로 내려설 수 있는 마루가 있고 잘 쓸어놓은 마당이 있다.


그는 이미 대문을 열고 떠난 듯하다. 발자국조차 정성스레 비질하여 없애고.


나는 마루에 아무렇게나 앉아 멍하니 마당과 하늘과 대문 밖으로 보이는 길 조금을 보다가


내려다보니 이렇게나 잘 닦인 마루에 고인 표정이 버섯의 군락지처럼 드글드글 피어 있네.


아름다운 반점을 뜯어 입에 넣는 거다. 권민경의 시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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