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도 종종 슬픔을 느끼는데요. 아름다움이란 '손에 닿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에 감동하면서, 숭고한 사랑의 이야기에 감동하면서, 또 말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어떤 낯선 감각을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우리는 그 아름다움이 나의 손에 닿지 않음을 절감합니다. 그 손에 닿지 않는 감각이야말로 아름다움의 요체이자, 아름다움이 자아내는 슬픔의 까닭입니다.
(나에게) 좋은 시를 읽으면 마냥 기쁘지 않다. (나에게) 좋음이 크면 클수록 어딘지 마음이 젖는다. 그 감각을 시인은 '읽는 슬픔'이라고 표현하나 보다. 사위가 어두워지는 것은 좋음에 몰입하기 때문에, 살짝 추위를 느끼는 것은 세계로부터 분리되므로, 감정의 날이 서고 감각이 명료해지는 것은 시가 구축한 어느 시공간에 이미 내가 편입되어 있으므로. 시를 읽는 일은 그것에 충실하면 할수록 외롭다.
그러나 좋은 시를 나누는 일은 한없는 기쁨이다. 그것을 시인은 '말하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좋은 것은 주머니에 넣고 혼자 알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뛸듯이 좋은 것은 도저히 혼자 간직할 수 없다. 천진하게 손바닥 위에 올리고 동네방네 말하고 싶다. 와, 이것 좀 보세요, 이렇게나 아름답게 빛나는 언어가 있어요.
물론 시인의 사랑은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투명가위로 잘리는 듯 온전치 못하고 외롭지만,
그것 역시 사랑의 순도가 너무 높아 되려 추운 것은 아닐련지.
나는 시인이 내어놓은 시들을 가만히 들춰보고 어깨에도 얹어본다. 맨살에 닿으면 탈이 나는 늦봄의 햇볕처럼 뜨겁고 따가운 무엇.
시와 그 시에 붙은 시인의 말들이 너무 고와서 슬프다. 읽는 내내 슬픈데 어디 바닷가에 주저앉아 한없이 읽고만 싶었다.
그 아름다움을 데려와 가만히 어두워지고
맞잡은 손에 이어주고 싶었다. 사랑으로 환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봐요, 여기 이렇게,
빛나는 언어들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