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명, 도시가스

by 별이언니

빛바랜 일을 한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쓴다. 바로 던져버린다. 쓰레기통에 들어가버린다. 이번에도 틀린 것 같다. 틀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라지는 구름을 바라본다. 좋은 글, 더 좋은 글을 쓰는 일이 가능할까. 버렸다가 복구시켰다가 다시 삭제하면 생각지도 않은 말들이 나타난다. 새로움은 죽음을 이어가는 것인가​


글을 이어간다. 글을 쏟아낸다. 글을 덧붙인다. 나는 글과 함께 있지 않다. 희미하게 이어지며 잠시 얼룩처럼 보이는 빛, 빛의 산만한 이데올로기가 따뜻하다. 밖에는 시끄러운 소리 앞차가 경적을 울리고 뒷차가 경적을 울린다. 차들이 시계 방향으로 빠져나간다. 글은 어떤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걸까. 눈앞에서 사라지는 빛을 붙잡지 않는다. 같은 책상에 앉아 같은 일을 하며


<정적이 흐른다> 중




인간의 시야는 생각보다 넓어서 상상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곳까지 보고 있다고 한다. 의식은 보지 못하는 구석의 어른거림을 무의식은 줄곧 바라보고 있다. ​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을 계속 보고 있는 감정은 어떨까. 발등에 개미가 올라왔다가 내려가고 하루 종일 스물거림을 느낀다. 꽃이 부러진 자리에 손가락을 올리고 환상통을 생각한다. 벽돌은 비정형으로 쌓여 견고한 사각의 벽을 만들고 그 안에 담긴 잠은 물크덩하지만 의외로 알람 없이도 능숙하게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뜬다. 똑같은 매일을 다르다 여기며 서로 다른 꽃이 피거나 달력의 동그라미를 헤아리면

시간이 흐른다. 모르는 사이 전파도 흘러넘쳐 쓰레기가 되고 휴일이 일주일에 이틀로 늘어도 사람들은 늘 기진맥진한다. 도구가 진화하여 하루에 할 일은 늘어났지만 육체와 영혼은 아직 모닥불을 보며 손을 쬐던 시절에 머물러 있으니. 모두 과로사하기 직전, 병동의 좁은 복도로 불 밝힌 버스가 끄덕끄덕 달린다.

어느새 도시가스 보급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온 동네 모든 집의 벽마다 빠짐없이 도시가스 배관이 설치되었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은은하고 다정한 가스가 땅을 흘러 벽을 타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


내장을 환하게 밝힌다.